| 제목 : A Rule against Murder 작가 : 루이즈 페니 출판사 : Minotaur Books 출판연도 : 2008 |
현대 코지 미스터리 분야에서 루이즈 페니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주자일 겁니다. 경력만 놓고 보면 2005년에 데뷔해서 이제 6번째 작품 출간을 앞둔 신인급 작가이지만 이미 발표한 5편의 작품으로 이룩한 성취는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데뷔작부터 부침 없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쩐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코지 미스터리 장르가 고전 미스터리의 유산을 가장 많이 계승한 장르이기는 하지만 루이즈 페니의 작품은 코지 미스터리 내에서도 상당히 고전적인 색채를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고전 스타일을 살리려고 하는 상당수의 현대 코지 미스터리가 20세기 전후의 시대적 배경을 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를 배경으로 우직하게 고전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루이즈 페니의 가마쉬 경감 시리즈는 자못 흥미롭습니다.
저는 앞선 세 작품을 읽으면서 고전과 현대 미스터리를 매끈하게 섞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지만 이 작품을 집어들고 읽어가면서는 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까지 고전적인 스타일을 밀어붙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작품의 배경이 되는 벨샤세 장원부터가 고전 미스터리의 핵심 무대장치인 눈 덮인 산장의 현대판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장원이 위치한 마사위피 호숫가는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휴양지답게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거니와 사건이 벌어진 당일에는 폭풍우가 몰아쳐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기까지 하니까요. 심지어는 경찰이 이곳에 수사본부를 차릴 때도 '전기 콘센트가 모자라'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할 정도이니, 작가가 마음먹고 무대를 안배해 놓았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여기에 기본적인 얼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0시를 향하여>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을 절반씩 섞어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요. (특히 작품 속 모 인물이 자신의 자식에게 'Syphilis(매독)'라는 이름을 붙여줄까 생각하는 대목은 <Y의 비극>에 대한 노골적인 헌사나 다름없습니다.) 가마쉬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연례행사로 고급 여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벨샤세 장원으로 휴가를 오게 됩니다. 이들 부부와 함께 이곳에 투숙한 사람들은 오랜만에 한곳에 모인 핀리 가 사람들이죠. 악의를 거리낌 없이 내뿜는 큰아들 부부, 캐나다 전역을 뒤흔든 스캔들에서 피신해 온 큰딸, 이 자리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작은아들 부부,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막내딸, 그리고 이들과 새로 맞은 남편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어머니가 그들입니다. 벨샤세 장원의 구성원들, 즉 투숙객과 여관 스태프들은 처음부터 삐걱거리며 캐나다 건국 기념일을 전후한 여름휴가 시즌을 보내게 됩니다.
핀리 가 사람들이 오랜만에 한데 모인 이유는 오래전 작고한 친아버지의 조각상을 이 장원 한구석에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 조각상은 이런 종류의 작품이 응당 그래야 할 것처럼 당당한 느낌을 주는 대신 로댕의 <칼레의 시민>이 떠오를 정도로 뭔가 불안하면서도 못한 말이 있는 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아버지와 자식들 간의 과거 관계의 직접적인 반영이죠. 그리하여 가족들이 한데 모이면서 해묵은 감정이 다시 살아나 서로를 향한 적의는 불길하게 장원을 맴돕니다. 이윽고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이러한 불길한 예감은 조각상이 추락해서 누군가를 덮치면서 현실화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휴가지가 사건 현장이 되어버려 자연스럽게 사건 수사에 임하게 된 가마쉬는 캐나다에서도 손꼽히는 비겁자로 비난받았던 자신의 아버지의 그림자가 자신의 가정 안팎에서 동시에 드리워지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벨샤세 장원에 닥친 비극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살인으로 판명되면서 수사팀에는 두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누가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가? 범인은 범행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저지를 수 있었는가? 수사가 진행되면서 초점은 점차 두 번째 질문에 맞춰져 수 톤 짜리 조각상을 인력으로 어떻게 밀어 떨어뜨릴 수 있는지 밝혀내는 일이 핵심이 됩니다. 트릭 자체는 꽤 간단한 편에 속하지만, 누가 저질렀는가가 아닌 어떻게 저질렀는가에 수수께끼가 집중되는 모습을 보다 보면 흡사 딕슨 카 스타일의 불가능 범죄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죠. 크리스티의 무대 구성, 퀸의 인물 구성, 카의 사건 구성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말하면 과장이겠지만, 이처럼 철저하게 고전적인 스타일로 작품 얼개를 쌓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일부러라도 그렇게 믿고 싶어집니다.
저는 좀 놀랐습니다. 이번 작품에서 전편까지의 무대였던 쓰리 파인즈를 떠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죠. 저는 앞선 세 작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무대였던 쓰리 파인즈에 긍정적인 치유의 공간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계속해서 이 마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가려면 한 번쯤은 마을을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 세 작품은 3부작으로 묶일 수 있으니 이번 작품에서 다른 무대를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은 고전적인 후더닛 스타일에서 벗어나 좀 더 현대적인 스타일을 택할 거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런데 쓰리 파인즈라는 여러 함의를 담은 장소 대신 새 무대로 등장한 벨샤세 장원은 고전 미스터리의 공간적 배경의 외연과 굉장히 흡사한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정 출연진들 위주여서 전형성을 부여할 수 없었던 전작들에 비해 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을 위한 공간 위에서 고전적인 역할을 적절하게 분담해서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죠.
이쯤 되면 이 작가가 이렇게까지 고전 스타일에 천착하는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그냥 이 스타일이 좋아서,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어서라고 말하는 건 그다지 좋은 답이 되지 못할 겁니다. 만일 그렇다면 다른 작가들이 제시한 훨씬 좋은 예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을뿐더러 현재 이 시리즈가 획득하고 있는 찬사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시대적 배경이나 소재의 선택, 결정적으로 주제 자체가 고전 미스터리의 재현과는 좀 거리가 있죠. 게다가 이 시리즈에서는 스타일은 후더닛이어도 수수께끼를 구성하는 트릭은 클라이맥스를 구성할 수 있는 최소 요건 정도로만 활용됩니다. 오히려 이 작품을 고전 스타일로 만드는 것은 수수께끼나 풀이 과정보다는 크리스티가 확립시켜 놓은 코지 미스터리 특유의 공간적 배경과 인물 구성을 현재 시점을 배경으로 정교하게 재구성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죠.
이 시리즈에서는 작가가 쓰리 파인즈라는 공간에 대해 갖는 강한 애정과 정교한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The Cruelest Month> 리뷰에서 루이즈 페니가 쓰리 파인즈에 대해 어떤 안배를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에게 있어 쓰리 파인즈는 살인 사건도 종종 일어나는 잔혹한 현실의 반영이자 그러한 비극을 극복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전자를 위해서는 이 마을을 둘러싼 테두리를 느슨하게 풀어놓아 외부와의 접점을 마련해 놓고, 후자를 위해서는 범죄 현장이 되는 해들리 하우스를 극도로 인공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버려 마을과 일정 부분 선을 긋습니다. 쓰리 파인즈가 캐나다 동남부, 몬트리올 근방에 실제로 위치한 마을이라고 계속해서 귓속말을 하는 한편, 잔혹한 범죄의 현장이라는 비일상의 흔적을 꽁꽁 싸매어 흔들림없이 마을 한구석에 박아놓는 것이죠. 발상 자체는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완성도가 굉장히 높아요.
그리고 이 마을에서 이야기 속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대개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사람들입니다. 4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이르는 주 조연급 인물들이 끈끈하면서도 느슨한 유대를 형성하며 이야기 속에 교대로 머리를 들이밉니다. 나이를 충분히 먹어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한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서 만든 공동체는 굉장히 안정적인 기반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공동체에 아이들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미르나와 루스는 독신이며 가브리와 올리비에는 게이 커플이죠. 유일하게 자식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모로우 부부의 경우에도 그들의 인생 계획에 자식이란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하여 이들이 구성하는 공동체는 수평적으로는 열려 있지만 수직적으로는 닫혀 있어 특정 세대와 계층만의 경계를 형성합니다. 해들리 하우스가 쓰리 파인즈 한 곳에 살인사건이 안심하고 활개를 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있다면, 이러한 인물 구성은 그 무대에 올라갈 선수 명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구성을 통하여 이 시리즈의 초반 세 작품은 굉장히 정교하게 다듬어진 3부작 미스터리가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적당히 떨어진 시골 마을, 마을 내에서 테두리가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 한 공동체, 외부에서 들어와 이 공동체를 관찰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 작위적으로 여겨질 위험이 다분한 이러한 고전적인 설정은 쓰리 파인즈라는 배경 안에서는 굉장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의 무대에서 흔하게 느낄 수 있는 인공적인 양식미는 상당 부분 희석되어 버리고요. 이를 보고 있자면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를 현재 시점에서 쓰기 위해 이처럼 고전적인 설정을 끌어왔다기보다는, 작가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현실에 이식하기 위해 고전 미스터리의 작법을 빌려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루이즈 페니가 이 시리즈를 집필하는 진짜 목적이기도 할 겁니다.
그런데 네 번째 작품인 본작에서는 쓰리 파인즈를 떠나 보다 인공적인 공간인 벨샤세 장원으로 무대를 옮깁니다. 벨샤세 장원은 그냥 딱 떼어 100년 전 시점에 갖다놓는다 할지라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고전적인 무대장치이자 외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공간입니다. 따라서 이곳에는 쓰리 파인즈에서 느낄 수 있었던 현실 세계와의 접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전작에서 해들리 하우스는 쓰리 파인즈 한구석에 심어놓은 나무 같다면 벨샤세 장원은 그저 덩그러니 놓인 화분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따라서 비교적 효과적으로 현실에 안착한 쓰리 파인즈와 해들리 하우스와는 달리 네 번째 범죄의 무대인 벨샤세 장원은 그 실체를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습니다. 지도 상으로는 쓰리 파인즈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는 공간인데도요. 작품 내에서 가마쉬는 종종 쓰리 파인즈와 벨샤세 장원 사이를 왕복하곤 하는데, 아무리 봐도 타임슬립 내지는 차원이동의 느낌마저 든단 말이죠.
그런데 이 작품은 이전과는 다른 부분에서 외연을 확장합니다. 세대 간의 단절을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던 이전 사건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살인사건이 미치는 여파는 세대를 수직으로 관통하여 뻗어나갑니다. 그러고 보면 사건 한복판에 던져진 핀리 집안 사람들은 이 시리즈 최초로 3대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가족입니다. 어린이라곤 눈을 씻고 살펴봐도 찾아볼 수 없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 집안의 3대째인 빈은 마지막까지 중요하게 다루어지기도 하죠. (가마쉬가 빈이 혼자 있는 모습을 몰래 관찰하는 대목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묘사입니다.) 동시에 가마쉬의 아버지가 처음으로 언급되며 그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단순한 부자와의 관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아들을 거쳐 그 이후까지 뻗어가리라는 강한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범인의 범행 동기 또한 이러한 작품의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행보는 모두 이쪽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남녀 간의 사랑 문제에서도 나이 차가 꽤 나는 모습을 보이니까요.
따라서 이 작품의 첫머리가 벨샤세 장원의 역사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장원이 처음 세워졌던 과거와 고급 여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연결고리를 찾아갑니다. 그러면서 이 장원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던 Robber Baron(초기 자본주의하의 악덕 자본가)들의 이미지의 일부는 조각상의 주인공인 찰스를 위시하여 그의 부인과 자식들에게 그대로 덧씌워지게 되죠. 'The Robber Barons were back. They'd come to the Manoir Bellechasse once again, to kill'이라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저택의 용도는 달라졌을지언정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벨샤세 장원은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들이 활동하는 무대를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역사성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으니 대체 뭔 놈의 공간인가 싶습니다.
이처럼 벨샤세 장원은 흡사 타임캡슐처럼 과거로부터 전해져 온 살인의 무대를 그대로 안배해 놓습니다. 고립된 무대는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는 대신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강조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루이즈 페니가 이야기의 무대를 다루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죠. 쓰리 파인즈를 이야기의 무대로 사용할 때는 공간의 영속성을 획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벨샤세 장원에 대해서는 초반에 역사 이야기를 끌어들였음에도 딱히 그런 의도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합이라는 이야기를 강조하기 위해 다른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외부와 단절시켜 놓은 공간이라는 느낌이 강하죠. 이 때문에라도 쓰리 파인즈와는 달리 벨샤세 장원은 이 시리즈에서 재차 등장하지는 못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이야기가 썩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이 시리즈의 주요 등장인물들의 나이는 대개 4~50대이고, 이들은 사건을 겪으면서 이런저런 갈등은 겪을지언정 나이에 걸맞은 연륜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연배는 비슷하지만 행동은 영락없는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보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이고 전작들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이미지를 구축했던 사람들도 여기서는 퇴행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죠. 이야기는 여전히 섬세하고 묘사하는 방식도 풍부하며 결말의 여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점에 선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은근하면서도 진득한 분위기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단순히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진 거라면 괜찮겠지만 이전의 사색적인 분위기를 대신하여 등장하는 질풍노도식의 감정이 그다지 매끄럽게 그려지지는 않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가마쉬 경감의 태도는 이러한 사춘기 중년들의 모습과는 극단을 이룰 정도로 의연한 모습이어서 다른 이들과는 반대의 의미에서 감정이입의 여지가 적습니다. 가마쉬 경감은 고전 미스터리의 이상적인 경찰 탐정의 모습을 현대로 그대로 이식해 놓은 후 여기에 현대적인 고뇌를 불어넣은 캐릭터이고, 따라서 현대 경찰 시스템에서 좀 더 초인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현대 조직 사회에서 초인적인 개인이 으레 그러하듯 가마쉬 경감이 만만치 않은 질시와 견제에 시달리게 되는 건 당연하겠죠. 하지만 매 작품마다 닥치는 이러한 위기 상황이 막판에는 그에게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건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약이 오르기도 합니다. 이전 작품들에서는 주변인들이 인격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된 사람들이어서 나름 균형이 맞아 나름 납득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가마쉬 경감 혼자서만 독야청청하는 모습이니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좀 어색하게도 보이죠.
하지만 이 작품에서 추리소설의 전통적인 무대장치를 다루는 방식은 굉장히 훌륭합니다. 현대 추리소설에서 고립된 장소를 배경으로 선택할 때는 종종 비현실성이나 개연성의 부재를 지적받곤 합니다. 그러한 지적을 감수하면서도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미를 살리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무대장치의 규칙을 현대적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요소를 적절히 비트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공간을 다루는 방식은 장르적이라기보다는 문학적입니다. 재미있게도 그러한 문학적인 시도에서 탄생한 벨샤세 장원은 그 어떤 현대 미스터리보다도 전통적인 추리소설의 인공적인 무대장치와 흡사한 외연을 띠고 있죠. 이는 공간이 작품에 기여하는 방식은 고전 미스터리와는 전혀 달라도 살인사건의 요소요소를 적절히 배치하고 진행시키는 본연의 역할은 전혀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하여 벨샤세 장원은 현대 미스터리의 주제를 강화하는 공간으로서도,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미를 고스란히 계승하는 공간으로서도 상당한 성취를 이룩합니다.
이 시리즈는 다음 작품에서 쓰리 파인즈로 귀환합니다. 고즈넉한 숲 속에서 아침 이슬을 맞고 골동품 카페의 안락한 벽난로 앞에서 차를 음미할 수 있는 곳, 여러 번에 걸친 살인사건에서도 여전히 그 정취를 잃지 않고 살아남은 곳으로 돌아가 새로운 비극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저는 벨샤세 장원을 한 번 거친 이 시리즈가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가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일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만일 이 작품을 전작들과 궤를 달리하게 만들었던 요소들 또한 일부 갖고 돌아갈 수 있다면 훌륭하게 현실 속에 자리 잡은 쓰리 파인즈에 좀 더 다채로운 면을 조각해 넣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네 편을 보고 비로소 확신했듯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살인사건의 무대를 세심하게 빚어내는 루이즈 페니의 솜씨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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