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Acrobat Mystery Awards (2)

[아불라피아]
2009 Acrobat Mystery Award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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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Acrobat Mystery Awards (4)


올해의 장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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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 낸시 피커드

'1월 초입에 올해의 추리소설이 확정되어 버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좀 날카로운 독자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게 되는군요.'

지난 1월에 작성했던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감상 포스팅은 위 문장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말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게도 그동안 추리소설을 꾸준히 읽어오면서 형성된 작품 판단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치 같은 것이 있고, 그 기준치에 따르면 이 정도 되는 작품을 만나게 되는 경우는 1년에 몇 차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09년이 거의 통째로 남은 시점에서도 이 작품의 위치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셈이었죠. 1월에 이런 작품을 만나게 되다 보니 이 작품은 올해 읽은 추리소설을 판단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를 첫 번째 작품으로 정해놓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 접하게 되는 인상깊은 작품들을 이 작품에 견주어 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이후 읽게 되는 작품들을 좀 깐깐한 시선에서 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평소라면 이 정도면 좋은 작품이라고 여길 수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한 번 더 꼼꼼하게 생각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품 판단에 있어 예전보다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기준치 자체를 좀 높게 잡다 보니 좀 억울한 작품도 있었을 겁니다. 제가 미스터리 계열 작품에는 대개 너그러운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감안해도요. 심지어 가을쯤 들어서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이 조금씩 퇴색될 무렵에는 제가 이 작품을 좀 신성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심이 생기면서 작품을 재차 들춰보기도 했으니, 올해 이 작품을 한 서너 번은 읽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이 작품을 한 번 더 재독하면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작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올해 최고의 미스터리에 걸맞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캔자스 지방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훌륭한 경력을 지닌 노작가의 회심의 역작인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와 원숙한 플롯, 작가의 노련한 필력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그러한 분위기에 필요 이상으로 발목 잡히지도, 발랄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소재주의에 매몰되지도 않습니다. 서로 대비되는 이미지가 작품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 분량 이상의 볼륨감이 느껴지기도 하죠. 결말이 조금 과하게 희망적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흠을 잡기도 어렵고, 반면 장점은 몇 가지라도 댈 수 있는 작품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벌어지는 사건의 양상이나 이에 대한 묘사의 수위를 낮추지 않더라도 코지 미스터리 특유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코지 미스터리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 퍼즐 미스터리의 현대적인 계승이라고 애써 주장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보통은 사건 묘사에 있어 선정적인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일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미지가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 이 또한 고전 미스터리의 방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것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이처럼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코지 미스터리가 현재에도 유효한 지분을 점하게 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코지 미스터리와는 사뭇 다른 길을 걷습니다.

'고전 미스터리에서 보여준 것처럼 살인을 비롯한 범죄에서 필요 이상의 선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사건을 오락거리의 요소로 다룬 것이 일군의 코지 미스터리라면(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는 이와는 아예 정반대의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http://mcphisto.pe.kr/416에 살짝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고전 미스터리에서 배제했던 사건의 밑바닥에 깔린 인간의 갖가지 감정의 양상을 코지 미스터리의 방식으로 소화시키는 것이 또 다른 코지 미스터리의 발전 방향입니다. 그리고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후자의 성격을 갖는 코지 미스터리로서는 거의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입니다.'

이처럼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미국의 코지 미스터리가 현재 어떤 수준에까지 도달하였는지 알 수 있는 바로미터로 작용합니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코지 미스터리가 아니라 그 경계선쯤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이러한 점은 오히려 이 장르의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의미를 부각시킵니다. 무엇보다 국내에는 코지 미스터리가 미스터리 장르의 칙릿 정도로 알려지고 소비되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작품의 출간이 국내 추리소설 시장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 있어서도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앞으로의 추리소설 독자 생활에 있어 하나의 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큽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코지 미스터리의 또 하나의 조류가 확고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고, 그 조류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적극적으로 따라갈 의욕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을 주변에 좀 더 알리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습니다. 작품성에 비해 아쉽게 묻힌 작품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전술한 이유 때문에 제게 이 작품은 좀 더 각별한 의미로 자리 매김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극히 한정되어 있어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마저도 충분히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저 자신에게 꽤 중요한 의미로 자리매김했던지라 다른 사람들에게 객관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점을 부각시켜 들이밀려는 의욕이 그다지 생기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1년 동안 찬찬히 놓고 살펴본 결과, 2009 AMA의 첫 줄에 놓을 수 있는 작품임에는 물론이고 올해 출간된 작품 중에서도 단연 수위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아직 출간된 지 1년도 안 된 책이니 아직 늦은 건 아니겠죠. 이 작품 속에서는 17년이나 걸렸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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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till Life - 루이즈 페니

고전 미스터리에 비해 현대 미스터리가 갖는 장점은 무엇보다 독자들이 현재를 함께 살아가면서 호흡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는 동시대의 정서를 공유한다든지 사회상을 좀 더 밀접하게 느낄 수 있다든지 하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국내 미스터리보다 해외 미스터리를 훨씬 많이 접하는 국내 독자들에게는 그다지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테고요. 제아무리 이런저런 경로를 통하여 익숙하다 한들 타 문화권에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따라서 국내 미스터리 독자들에게 있어 현재를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는 개별 시리즈나 작가의 행적에 한정됩니다. 이미 비블리오그래피가 확정되어 버린 작가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얻는 감흥보다는 신작 집필 소식을 접하고 제목을 전해듣고 마침내 신간을 손에 쥐는 기다림의 행복이 더 생생하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아울러 첫 작품부터 찍어놓고 발걸음을 맞춰 가는 작가의 경우, 그 성장세를 긴 호흡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제게 있어 말 그대로 현재진행형인 미스터리 작가는 몇 명 있습니다. 일본 작가 중에서는 미야베 미유키나 사쿠라바 가즈키가 될 테고, 이사카 고타로도 전작들을 해치우고 나면 아마도 이 대열에 합류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서양 미스터리에서는 딱히 그런 작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서양 현대물 중 거의 실시간으로 시리즈를 읽어나가는 것은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정도일 텐데,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선뜻 손이 안 가는 것을 보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죠. 그러다가 올해 처음으로 만난 작가가 2005년에 첫 작품을 내놓은 루이즈 페니이고, 바로 그 첫 작품인 <Still Life>을 읽고 이 작가가 걷는 길을 함께 걷겠노라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이 작품 특유의 색채와 태도 때문입니다. 흔히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음험한 범죄형일 거라는 편견에 시달리게 됩니다. 요즘에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추리소설 독자를 비난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협박 아닌 협박을 건넬 절도로 무심하게 반응합니다만, 사실 이런 문제는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넌지시 생각해 볼 문제이기는 합니다. 제아무리 열성적인 마니아라 할지라도 추리소설'만' 읽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추리소설 독자들은 간접경험이나마 강력범죄를 비교적 빈번하게 접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죠. 고전 미스터리야 살인사건의 선정성을 거의 내비치지 않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는 해도 현대의 범죄 스릴러의 수위는 물론이거니와 그 정서 또한 분명 만만치 않은 수준이니까요.

현대 미스터리의 비교적 높은 수위가 독자들에게 딱히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영상이 글보다 좀 더 효과적인 언어가 된 세상에서 소설이 주는 충격적 이미지는 이미 범용한 수준이 된 지 오래죠. 하지만 이런 작품들에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어두운 정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잔혹한 묘사를 소화하는 것보다는 좀 더 어려운 일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어두운 범죄소설을 몇 편 읽고 나면 소맷자락에 잔뜩 달라붙은 우울한 정서를 좀 털어내고 스스로를 달래줘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젖곤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정반대에 위치한 발랄한 작품이 아닌, 역시 비극을 다루고 있지만 다 읽고 난 후에는 어느 정도 위안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작년에 읽은 <살인의 역사> 같은 작품이요. <Still Lfe> 또한 역시 독자들에게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런 효과는 현대 범죄소설이 접근하는 방향과는 정 반대의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Still Life>는 전통적은 후더닛 스타일에 보다 충실한 작품입니다. Three Pines라는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는 공간적 배경, 작품의 첫 시작 시점에서 이미 발생한 살인사건, 공동체 속의 용의자와 범인, 외부에서 마을 공동체 속에 편입되는 탐정, 여기에 추리소설에 으레 등장하는 갖가지 Red Herring(이라는 말이 작품 속에 직접 언급되기도 합니다.)까지. 전통적인 영국 추리소설에서 접할 수 있는 요소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정교한 트릭 대신 다분히 의도적인 생략과 미스디렉션에 의존하고 있긴 합니다만, 진상에 접근하는 방식이 대단히 낭만적이라는 점 또한 과거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지점입니다.'

이 작품은 코지 미스터리라는 점을 감안해도 꽤 올드타입입니다. 현대 미스터리에 익숙한 독자라면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읽고 발표 연대를 추측하기 조금은 어려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독자와의 머리싸움을 핵심 본령으로 삼았던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와는 차별되는 몇 가지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영락없는 현대 미스터리입니다. 전통적인 후더닛 미스터리의 외피를 쓰고 있음에도 작가의 시선이 사건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요. 그러면서 이 작품은 고전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여 전혀 다른 지점으로 가지를 뻗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지가 맺는 열매는 피해자에 대한 연민으로 익어가기도, 남은 자들이 보듬어 가는 상처를 품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물신화된 단서로 다루지 않습니다. 추리소설에서 이야기에 추가동력을 발생시키는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사건이 발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의 연장 선상이고요. 그 대신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운 추모의 정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을 지배합니다. 이러한 정서를 유지시키는 것은 피해자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처와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고요. 살인사건이 관계자들에게 알려졌을 때의 충격, 첫 충격 이후의 공허함, 뒤이어 찾아오는 슬픔, 서로의 어깨를 감싸며 슬픔을 보듬는 모습, 비극을 현실로 수용하는 태도 같은 것들을 작품 전편에 걸쳐 이렇게 조근조근 묘사하는 추리소설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거 후더닛이라니까요.'

이처럼 고전 미스터리에서 출발하지만 고전 미스터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작품의 태도와 정서는 독자의 마음을 굉장히 섬세하게 어루만집니다. 거칠게 대입하면 '왜 탐정들은 죽을 사람은 다 죽고 나서야 범인을 잡아요?'라는 해묵은 비난에 대한 성실한 자기반성으로도 보일 정도입니다. 그럼으로써 후더닛 미스터리 특유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맛은 좀 떨어질지언정, 살해당한 피해자에 대한 생생한 충격과 사건 관계자들이 내비치는 정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처럼 고전 미스터리의 형식을 빌려왔으면서도 고전 미스터리의 태도에서 탈피하여 독자들 위로하는 이 작품만의 방식은 고전과 현대물의 간극을 극도로 좁혀놓습니다. 이게 바로 루이즈 페니가 고전 후더닛 미스터리를 현대에 이식한 방식입니다.

이 이야기는 매번 하는 것 같지만, 고전 미스터리와 현대 미스터리를  받아들여야 했던 독자 생활을 하던 제게 있어서 이런 스타일의 작품은 보다 각별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인 아르망 가마쉬가 매번 쓰리 파인즈를 찾게 되는 것처럼, 저 또한 앞으로 계속 캐나다 몬트리올 근처의 작은 마을을 기웃거리게 될 테죠. 살인사건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작은 마을에 동경을 품게 되다니, 더 이상 캐나다에 대한 환상이 생기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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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대인 경찰 연합 - 마이클 셰이본

저는 유대인 작가의 유대인을 소재로 삼은 작품은 좀 삐딱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품의 질에 관계없이 그런 작품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평을 보장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하고요. 그중에서도 홀로코스트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작품들의 경우, 작가 자신이 그 소재의 무게에 짓눌리거나 반대로 소재를 등에 업고 막 나가는 모습도 종종 보여주곤 한다는 점에서 평을 내릴 때 좀 신중해지곤 합니다. 애초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해석 자체가 극도로 정치적인 문제라 작가들이 이를 다루는 방식 또한 여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점이 평가에 있어 어려움을 더하게 되죠. 유럽의 유대인에 대한 혐오는 뿌리깊은 것이라는 점에서 기타 유럽 국가들이 책임을 나치 독일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혐의도 둘 수 있습니다. 유대인 홀로코스트 자체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면서 부각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근대에 자행된 여러 대학살극이 존재함에도 홀로코스트라고 하면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유대인 학살을 주로 의미한다는 점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죠.

그런데 유대인들의 대체역사를 다루는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의 피해를 기존의 1/3 정도로 줄이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이런 가정이 주는 느낌은 굉장히 미묘합니다. 비율로만 따져보고 홀로코스트의 비극마저 1/3로 줄여버리려는 감정과 사망한 사람들의 수치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현실 인식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것이죠. 이런 감정의 충돌이 잦아들면 결국 남게 되는 것은 살해당한 사람들을 집단으로 뭉뚱그려 취합하지 말고 각각의 개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기반성과, 그런 상처는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그대로 남는다는 평범한 진리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설정만으로 가상의 역사는 현실의 한 지점에 그대로 꽂혀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대체역사를 다루는 상당수 작품들이 범하곤 하는 실수를 영리하게 피해 나갑니다. 보통 상당수의 대체역사소설은 결말 부분에 와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지 못해, 헛발질을 거듭한 끝에  제 발에 걸려 넘어지거든요. 하지만 이 작품은 막판의 진상이 작가가 가공으로 빚어놓은 역사의 핵심을 정면으로 관통해 버립니다. 가공의 역사를 편리한 배경 소재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클라이맥스에서도 여전히 그 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나온 주인공 일행은 부드럽게 현실 위에 안착합니다. 그들의 정체성은 작가가 창조해 놓은 세계 속이 아니라면 형성되기 어려운 종류임에도,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잘살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마무리가 가능했던 것은 작가가 역사를 과거의 유물로 다루지 않기 때문입니다. 알래스카에 유대인 정착지 건설이 고려되었던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작가는 이 계획이 실현되었다는 가정 하에 정교하게 역사적 궤적을 짜맞추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품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미 이 역사적 배경은 급변합니다. 렌즈먼을 위시한 등장인물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점은 이 거대한 유대인 자치구가 반환 시점에 이르러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때이니까요. 그리하여 작가가 애써 만들어 놓은 전후시대 유럽의 역사적 흐름 같은 정교한 장치들이 정면에 부각되지 않고 흔들리면서 조각조각 흩어지는 모습만 비춰질 뿐이죠.

여기에 싯카 지구의 세부적인 리얼리티를 담당하는 것은 하드보일드 특유의 대도시 뒷골목의 정서입니다. 작가는 고전 하드보일드에서 스테레오타입처럼 등장하는 음울한 정서를 상당 부분 가져와 가공의 도시에 이식함으로써 이 차가운 도시에 우울한 생명력을 불어넣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하드보일드식 이야기는 이 작품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 내맡기는 대신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각자의 사정을 부여하여, 그들이 내뱉는 자신의 이야기로 역사의 일면을 대체하도록 합니다. 커다란 밑그림을 그려놓고 완성품이라 주장하는 대신, 등장인물에게 각자의 붓을 쥐여주고 그들이 그려나가는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처음의 밑그림을 지워나가는 것이죠.

'랜즈먼을 비롯한 싯카 경찰서 형사들에게 닥친 상황은 일반적인 하드보일드의 주인공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대부분의 하드보일드의 배경인 대도시는 주인공을 비롯 누구 하나 없어져도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 않은 비정한 공간입니다. 하지만 싯카 지구는 태생부터가 불안정한 반석 위에서 형성된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자체의 수명도 이제 몇 개월 남지 않은 상태이고요. 랜즈먼의 사촌 동생이자 유대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인 베르코 셔미츠와 랜즈먼의 이혼한 아내이자 상관인 비나 겔피시 또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원주민 사회와 유대인 사회 그 어느 곳에도 온전히 소속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 베르코는 그만큼 더욱 안정된 미래를 위해 고심하며, 누가 봐도 유능한 경찰인 비나는 자신의 손으로 미국에 경찰 업무를 인계하고 스스로 싯카 경찰서의 막을 내려야 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담담하게 인정합니다.'

가공의 역사가 그려내는 클라이맥스는 판타지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거침없이 날개를 펴고 알래스카 상공을 활공하지만, 렌즈먼이 발 딛고 있는 하드보일드의 세계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기까지 줄곧 사람들을 다리를 끌어당겨 땅 위에 고정시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한 귀퉁이를 잘라내어 아무리 매력적인 이야기를 끼워넣는다 할지라도 그 성패는 현실과의 이음매를 꿰매는 솜씨에 달려 있는 거죠. 하드보일드의 솜씨로 매끈하게 꿰맨 대체역사 이야기. 추리소설 팬이라면 그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재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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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tefanet [2009/12/27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올해의 장편은 두 편 맞췄군요. 아깝다!
    그런데 나머지 두 편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는데, <Still Life>를 맞춘 사람이 있나요? 궁금...

    • acrobat [2009/12/27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쉽게도 한 분도 안 계십니다...-_-a
      제가 생각해도 좀 맞추기 어려우셨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는 나름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만 이건 딱히 그렇지도 않았으니까요.

  2. 메이즈리크 [2009/12/28 0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속으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스틸 라이프와 다른 작품을 하나 꼽았었는데 뭔지 기억이 나지 않군요. 전 유대인 경찰 연합을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 acrobat [2009/12/28 1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유대인 경찰 연합>을 찍어주신 분들이 꽤 많더군요. 리뷰에 무슨 말을 써놨더라...-_-a 아마 이 작품을 올해의 장면 부문에 올리지 않았다면 페이지 터너 부문에 넣었을 겁니다.

  3. Ryukio [2009/12/28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크... 저도 결국 마지막 고민하던 한 편을 틀렸군요. 그래도 작품별로 리뷰 창 띄워놓고 하나씩 창 닫아가면서 지우면서 남았던 목록에 있었던거 같은데요. 아까버라...ㅠ_-; 이벤트 응모하고나서 따라가며 보니 연말 공중파들 시상식 만큼 재밌습니다 >_<

    • acrobat [2009/12/28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게까지 고심해 주셨다니 엄청 감사합니다...-_ㅠ 원래 작년까지는 장편과 단편을 하나로 묶어서 올렸는데, 올해는 왠지 시상의 묘를 살리고 싶더군요...-_-)/

  4. carella [2009/12/29 0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till Life>는 모르겠지만 저도 올해 읽은 최고의 추리소설은 <스몰플레인스의 성녀>와 <유대인 경찰연합>이었습니다. 굉장했죠?

    • acrobat [2009/12/29 10:30]  [댓글주소]  [수정/삭제]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제 인생 최고의 추리소설들은 대개 추리소설 독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들이라, 향후 시간이 흘러도 <재앙의 거리>라든지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메인 스트리트> 같은 작품들의 위상은 변하지 않겠죠. 하지만 올해 선정된 작품들 같은 현대 미스터리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 위상이 어떻게 형설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들 작품 중에서 미래의 고전이 되는 작품이 있다면 꽤 뿌듯할 겁니다.

    • carella [2009/12/31 0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작품들은 작품의 무게에 역사의 무게가 더해져 그야말로 acrobat님 개인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고전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이죠. <메인 스트리트>야 뭐 좀 역사가 짧긴해도 말이죠. 제 입장에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는 코지 미스터리라는 장르적인 특성상 미래의 고전이라 부르기엔 좀 모자란 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유대인 경찰연합>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코지 미스터리 분야에서 제 경우는 <스위트홈 살인사건>이 그런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다 장르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나 <양들의 침묵>도 들고 싶네요.

    • acrobat [2009/12/31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통은 그렇게 장르를 선도하는 작품들이 고전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현대물은 그런 점에서 좀 더 고르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현대 미스터리 조류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지 짐작하는 것도 녹록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양들의 침묵>이 나온 지 벌써 20년 가까이 지났네요.

  5. Jacqueline [2009/12/30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유대인 경찰 연합>를 고르고 뭔가 하나는 원서가 될 거 같아 <still life>를 찍으려 했는데 재클린 윈스피어로 갔더니... OTL 역시 처음 고른 답이 정답이라는 -_-a

    2주간의 황금연휴을 맞아 친구에게 1년 전쯤 소개받은 <심야식당>을 읽고, <죽은 자는 알고 있다>까지 끝냈어요. 지금은 트위터? 글에 소개된 <돌 속에 흐르는 피> 시작했구요. 다음 주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심야식당>...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당장 연휴가 며칠 더 남았는데 신간소식이

    여기까지 적고 문득 떠올라 찾아보니!! <파일로 밴스의 고뇌>가 출간되었군요. :P
    기뻐요! LOL 또 뭘 장바구니에 담아야 할지 고민하러 갑니다.

    • 비밀방문자 [2009/12/30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acrobat [2009/12/30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심야식당> 좋죠. 어떤 의미에서는 음식만화의 이상이랄까요. 요새는 <맛의 달인>이랑 <여자의 식탁>이 뜸하게 나오기 때문에 찾아보는 음식만화라고 해봐야 <심야식당>과 <바텐더> 정도인데,<바텐더>는 요즘 에피소드를 보면서 제가 술을 좋아해서 이 만화를 좋아하지, 사실은 그렇게까지 이 만화를 좋아하지 않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심야식당>은 드라마도 좋아요. 고양이밥 에피소드를 보고 눈물이...-_ㅠ

      <주석 달린 셜록 홈즈>야...셜록 홈즈 영화 개봉의 힘을 톡톡히 봤죠. 서점에 가보니 홈즈 관련 책이 주르륵 깔렸던데요. 역시 영화화가 답이에요. 그런 점에서 셜록 홈즈 영화 후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점에서 3권도 기대해 볼 수도...-_-?

    • Jacqueline [2009/12/30 1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맛의 달인>은 100권이 넘어가네요? *.*
      <여자의 식탁>을 장바구니에 담아봐야겠네요.
      저는 <요츠바랑>을 좋아합니다. ^ㅅ^

    • acrobat [2009/12/30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으하하하...요츠바도 좋아요. 애 하는 짓을 보면 은근히 현실적이지 않나요?

    • Jacqueline [2009/12/31 0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츠바랑>을 올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예상치 못한 결과로... 자꾸들 "그러냐! 이건 뭐냐! 밥은 먹었냐!" 요츠바 말투를 따라하고 있더군요. 뭐든지 즐기는 무적 요츠바처럼 2010년을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s. <심야식당>의 여파로 바삭바삭한 베이컨이랑 스크램블에그에 맥주... 모닝이라고 하죠? 이 맛의 조화가 궁금해서 괴롭습니다.

    • acrobat [2009/12/31 18: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엇보다 베이컨을 바삭바삭하게 굽는 게 포인트죠. 계란후라이 노른자에 베이컨을 찍어 먹어도 맛있어요.

      드라마를 보니 버터라이스 같은 경우에는 대충 두어 번 섞고 마는 게 고작이더라고요. 우리네 상식으로 볼 때는 골고루 비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에요. 역시 비빔밥은 우리 고유의 문화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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