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Acrobat Mystery Awards (0)
2009 Acrobat Mystery Awards (2)
2009 Acrobat Mystery Awards (3)
2009 Acrobat Mystery Awards (4)
4년째를 맞는 Acrobat Mystery Awards이면 이제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정작 올해 들어 새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펑크를 낼 뻔하다가 2달을 늦게 내놓는 등 갖은 삽질을 거듭한 작년 AMA 탓일 겁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잠시 닫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하니 그나마 달랑 3회에서 끊어먹지 않고 간신히 이어갔다는 점에는 공치사를 하곤 합니다만, 아무래도 내놓는 입장에서나 보시는 분 입장에서나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애초에 늦었던 이유 자체가 블로그에 소홀하다 보니 읽은 책 내용을 까먹어 그거 복원하느라고 허둥댔던 것이어서, 이런 한계를 갖고 시작한 글 내용이 충실하기는 어려웠을 테죠. 그러다 보니 길이만 엄청나게 길어져 한 해 결산이라고 하는 취지에는 해가 갈수록 멀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AMA를 기획했을 때 의도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특정 작품이나 작가가 그해에 제게 끼친 영향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제때제때 해놨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속절없이 늘어지고 길이도 대책 없이 늘어났던 것이죠. 한해 결산이라는 일차적인 목표는 그럭저럭 달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을 떠나서 썩 마음에 드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처음에 구상했던 몇 마디 말로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형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만, 형식이야 어찌 됐든 1년 동안 접한 추리소설과 이에 대한 생각을 종합해 보자는 취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올해는 좀 달라졌을까요? 애초에 기록 자체를 성실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읽은 작품에 대해 메모 정도라도 충실하게 남기는 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태반이 망상 내지는 헛소리기는 해도 난생처음으로 다이어리를 빼곡하게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블로그에 남기는 글 수가 예전에 비해 늘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흥미롭게 읽은 작품에 대해서는 대충 감상이라도 끼적인 편이니 효율 면에서는 나름 긍정적일 테고요. 심지어는 카툰 같은 것을 만들면서 흰소리라도 대충 날리곤 했으니, 올해는 최소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귀찮다고 속에 담아두고 지내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트위터를 시작했으니 내년부터는 트위터가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바짝 날을 세우고 각오를 다져서 나온 결과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올해는 예전 PC통신 시절 처음으로 추리소설 팬덤에 발을 들이민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부쩍 힘을 빼고 느긋하게 즐기면서 추리소설을 접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추리소설 독자로서 유례없이 풍족한 세월을 겪다 보니 작품 소개에 대한 조급함이 많이 사라진 것이 그 이유일 듯싶고요.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호들갑도 한껏 떨 수 있었고 대놓고 그런 작품들을 홍보하면서 낄낄댈 수 있었던 거죠. 아직도 고대하던 작품이 출간되면 쾌재를 부르는 것은 한결같지만, 예전처럼 몇몇 작품의 출간에 목을 매지 않게 되었으니 추리소설 장르를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장르에 대한 뭉근한 애정이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사는 매번 변하고 그 애정의 깊이도 매해 달라지지만, 그 때문에라도 추리소설 애호가로서의 인생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재미있겠구나 하는 은근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아직도 추리소설 읽니?' 하는 친구를 잠자코 걷어차 주는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한껏 여유로운 기분으로 좀 더 아픈 부분을 골라서 차는 것 정도만 달라질 테고요.
올해는 유독 제가 즐거워할 출간작들이 많았던 듯싶습니다. 이는 요 몇 년 동안 일본 미스터리에 치여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던 서양 고전 미스터리의 출간이 비교적 활발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올해만 4편의 장편이 소개된 존 딕슨 카의 경우에는 기쁘긴 했어도 1년도 더 전부터 출간 예고가 되었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소개된 작품 중에는 '이걸 보게 되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표를 찌르는 출간이 좀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녹색은 위험>이나 앤서니 버클리의 <두 번째 총성> 같은 작품들은 서점에서 처음 발견하고는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가 결정타를 때린 셈이고요. 그중에서도 제게는 밴 다인 전집 기획 시도가 가장 큰 선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출간작들은 대개 서양 고전 미스터리에 치우쳐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다른 쪽을 그리 홀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최근의 추리소설 출간 경향에서는 서양 고전 미스터리는 가장 홀대받는 축에 속했으니까요. 2000년대 들어 리스트에서나 보아 왔던 고전 명작들이 속속 출간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는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DMB의 재등장으로 인하여 꽤 많은 작품들이 단기간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는 원전에 충실한 번역과 미려한 북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기획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퇴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시리즈로 인하여 새 번역으로 출간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작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보이는 사람도 꽤 있는 편이고요.
대신 현재의 국내 미스터리 시장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현대 일본 미스터리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죠. 여기에 일본 미스터리의 인기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서양 현대 미스터리 또한 수준작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어 서양 작품들에 대한 갈증이 그다지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확고한 팬층을 구축하고 있는 미스터리 작가도 여럿 존재하고, 작은 출판사에서부터 메이저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의 이름도 몇 개나 댈 수 있습니다. 애호가의 욕심으로 보면 여전히 아직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작품들은 여럿 있기는 해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배부른 투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80, 90년대에 추리소설 독자로 살아가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고, 그만큼 현재까지 추리소설 독자로 남아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일본 미스터리 팬덤과도 그 성향이 꽤 다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국내 추리소설 올드팬들의 가장 마지막 세대에 속할 테고요. 그런 상황에서 올드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작품들이 슬슬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추리소설 시장이 넓어져서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출간되는 징후라고 희망적으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추리소설이 활발하게 출간되던 유례없는 황금기가 슬슬 끝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2000년대 중후반의 국내 미스터리 시장은 일본 미스터리의 전성시대로 정의내릴 수 있지만, 실상 일본 미스터리가 그런 이름에 걸맞은 판매고를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정도를 제외하면 안정적으로 초판을 소화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요 몇 년간의 출간 러시로 인하여 웬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들은 얼추 소개된 셈이니, 앞으로 소개될 작품들이 현재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작품들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일본 미스터리 팬덤 자체가 조금씩 세가 꺾이는 느낌입니다. 최근 출간된 작품들을 여럿 접하면서 일반 독자에서 추리소설 애호가로 나아간 사람들도 많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점차 미스터리 장르를 식상해하면서 떠나가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리하여 올해의 서양 고전 미스터리 출간 경향은 추리소설 시장이 확대되었다기보다는 일본 미스터리의 과다한 판권 경쟁 및 미출간 화제작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팬더 미스터리 복간이 이러한 상황을 대표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들 계층이 유의미한 구매력을 보여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이러한 시도는 출판사들의 고육지책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활발히 출간되는 것이 마냥 즐거울 땨름이지만, 작품에 상관없이 출간 자체에 감지덕지하던 시절도 겪어본 독자로서는 조금 걱정이 됩니다. 이러다가 다시 한 번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이는 일개 독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저 이런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게 있어 올해는 앞으로 어떤 독자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해였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요 몇 년간 현대 미스터리에 대한 제 관심은 크게 북유럽의 범죄소설과 코지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들 서브장르에 대한 관심은 카린 포숨과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같은 몇몇 작가들에게 국한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비로소 코지 미스터리 장르의 흐름을 따라갈 의욕과 흥미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작년까지 집중적으로 읽어 왔던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을 일부러 멀리하고 한 타이밍 쉬어 가는 대신, 서양 미스터리의 최신 조류 중에서도 코지 미스터리 쪽에 하나하나 짚어갈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최근 가장 많이 방문하는 해외 미스터리 사이트가 http://cozy-mystery.com과 www.malicedomestic.org라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코지 미스터리 장르는 현재 미국에서 출간되는 미스터리 서브장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쪽 계열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의 국내 소개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요. 그런 점에서 국내에 활발하게 출간되는 작품들을 뒤로하고 굳이 외서 쪽을 기웃거리는 게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나 돈나 레온,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낸시 피커드에 더해 루이즈 페니, 셔린 매크럼, 재클린 윈스피어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소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가들을 매개로 삼아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도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코지 미스터리에 대한 관심은 비로소 현대 미스터리의 한 조류를 잡아 올라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고전 미스터리이지만, 아무리 고전 미스터리가 마음의 고향이라 한들 동시대를 호흡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하여 한 5년이나 10년쯤 후에는 21세기의 코지 미스터리의 동향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추리소설 독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증거가 될 테니까요.
2009 Acrobat Mystery Awards (2)
2009 Acrobat Mystery Awards (3)
2009 Acrobat Mystery Awards (4)
들어가며
4년째를 맞는 Acrobat Mystery Awards이면 이제 좀 익숙해질 만도 한데 정작 올해 들어 새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펑크를 낼 뻔하다가 2달을 늦게 내놓는 등 갖은 삽질을 거듭한 작년 AMA 탓일 겁니다. 중간에 블로그를 잠시 닫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고 하니 그나마 달랑 3회에서 끊어먹지 않고 간신히 이어갔다는 점에는 공치사를 하곤 합니다만, 아무래도 내놓는 입장에서나 보시는 분 입장에서나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애초에 늦었던 이유 자체가 블로그에 소홀하다 보니 읽은 책 내용을 까먹어 그거 복원하느라고 허둥댔던 것이어서, 이런 한계를 갖고 시작한 글 내용이 충실하기는 어려웠을 테죠. 그러다 보니 길이만 엄청나게 길어져 한 해 결산이라고 하는 취지에는 해가 갈수록 멀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AMA를 기획했을 때 의도는 작품 자체의 퀄리티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특정 작품이나 작가가 그해에 제게 끼친 영향에 중점을 두어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제때제때 해놨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속절없이 늘어지고 길이도 대책 없이 늘어났던 것이죠. 한해 결산이라는 일차적인 목표는 그럭저럭 달성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을 떠나서 썩 마음에 드는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처음에 구상했던 몇 마디 말로 촌철살인의 멘트를 날리는 형식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만, 형식이야 어찌 됐든 1년 동안 접한 추리소설과 이에 대한 생각을 종합해 보자는 취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올해는 좀 달라졌을까요? 애초에 기록 자체를 성실하게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읽은 작품에 대해 메모 정도라도 충실하게 남기는 해가 되었다고나 할까요. 태반이 망상 내지는 헛소리기는 해도 난생처음으로 다이어리를 빼곡하게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습니다. 블로그에 남기는 글 수가 예전에 비해 늘었다고는 할 수 없어도 흥미롭게 읽은 작품에 대해서는 대충 감상이라도 끼적인 편이니 효율 면에서는 나름 긍정적일 테고요. 심지어는 카툰 같은 것을 만들면서 흰소리라도 대충 날리곤 했으니, 올해는 최소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귀찮다고 속에 담아두고 지내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얼마 전부터는 트위터를 시작했으니 내년부터는 트위터가 이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바짝 날을 세우고 각오를 다져서 나온 결과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올해는 예전 PC통신 시절 처음으로 추리소설 팬덤에 발을 들이민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부쩍 힘을 빼고 느긋하게 즐기면서 추리소설을 접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요 몇 년 동안 추리소설 독자로서 유례없이 풍족한 세월을 겪다 보니 작품 소개에 대한 조급함이 많이 사라진 것이 그 이유일 듯싶고요. 그러면서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호들갑도 한껏 떨 수 있었고 대놓고 그런 작품들을 홍보하면서 낄낄댈 수 있었던 거죠. 아직도 고대하던 작품이 출간되면 쾌재를 부르는 것은 한결같지만, 예전처럼 몇몇 작품의 출간에 목을 매지 않게 되었으니 추리소설 장르를 바라보는 시야도 조금은 넓어진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장르에 대한 뭉근한 애정이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듭니다.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사는 매번 변하고 그 애정의 깊이도 매해 달라지지만, 그 때문에라도 추리소설 애호가로서의 인생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재미있겠구나 하는 은근한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니 '아직도 추리소설 읽니?' 하는 친구를 잠자코 걷어차 주는 일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한껏 여유로운 기분으로 좀 더 아픈 부분을 골라서 차는 것 정도만 달라질 테고요.
총평
올해는 유독 제가 즐거워할 출간작들이 많았던 듯싶습니다. 이는 요 몇 년 동안 일본 미스터리에 치여 상대적으로 홀대받았던 서양 고전 미스터리의 출간이 비교적 활발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올해만 4편의 장편이 소개된 존 딕슨 카의 경우에는 기쁘긴 했어도 1년도 더 전부터 출간 예고가 되었던 터라 그리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해 소개된 작품 중에는 '이걸 보게 되다니.'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표를 찌르는 출간이 좀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녹색은 위험>이나 앤서니 버클리의 <두 번째 총성> 같은 작품들은 서점에서 처음 발견하고는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가 결정타를 때린 셈이고요. 그중에서도 제게는 밴 다인 전집 기획 시도가 가장 큰 선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런 출간작들은 대개 서양 고전 미스터리에 치우쳐 있지만, 그렇다고 제가 다른 쪽을 그리 홀대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최근의 추리소설 출간 경향에서는 서양 고전 미스터리는 가장 홀대받는 축에 속했으니까요. 2000년대 들어 리스트에서나 보아 왔던 고전 명작들이 속속 출간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는지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습니다. DMB의 재등장으로 인하여 꽤 많은 작품들이 단기간에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는 원전에 충실한 번역과 미려한 북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트렌드와는 정반대의 기획이었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퇴색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시리즈로 인하여 새 번역으로 출간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작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보이는 사람도 꽤 있는 편이고요.
대신 현재의 국내 미스터리 시장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한 현대 일본 미스터리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확고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죠. 여기에 일본 미스터리의 인기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서양 현대 미스터리 또한 수준작들이 꾸준히 소개되고 있어 서양 작품들에 대한 갈증이 그다지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확고한 팬층을 구축하고 있는 미스터리 작가도 여럿 존재하고, 작은 출판사에서부터 메이저 출판사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을 꾸준히 출간하는 출판사의 이름도 몇 개나 댈 수 있습니다. 애호가의 욕심으로 보면 여전히 아직 번역되지 못하고 있는 작품들은 여럿 있기는 해도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배부른 투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80, 90년대에 추리소설 독자로 살아가기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고, 그만큼 현재까지 추리소설 독자로 남아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일본 미스터리 팬덤과도 그 성향이 꽤 다릅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국내 추리소설 올드팬들의 가장 마지막 세대에 속할 테고요. 그런 상황에서 올드팬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작품들이 슬슬 출간되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추리소설 시장이 넓어져서 좀 더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출간되는 징후라고 희망적으로 파악하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추리소설이 활발하게 출간되던 유례없는 황금기가 슬슬 끝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2000년대 중후반의 국내 미스터리 시장은 일본 미스터리의 전성시대로 정의내릴 수 있지만, 실상 일본 미스터리가 그런 이름에 걸맞은 판매고를 보여주었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럽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정도를 제외하면 안정적으로 초판을 소화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리고 요 몇 년간의 출간 러시로 인하여 웬만큼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작가들은 얼추 소개된 셈이니, 앞으로 소개될 작품들이 현재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작품들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일본 미스터리 팬덤 자체가 조금씩 세가 꺾이는 느낌입니다. 최근 출간된 작품들을 여럿 접하면서 일반 독자에서 추리소설 애호가로 나아간 사람들도 많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점차 미스터리 장르를 식상해하면서 떠나가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리하여 올해의 서양 고전 미스터리 출간 경향은 추리소설 시장이 확대되었다기보다는 일본 미스터리의 과다한 판권 경쟁 및 미출간 화제작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로 바람직한 모습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지만 팬더 미스터리 복간이 이러한 상황을 대표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들 계층이 유의미한 구매력을 보여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이러한 시도는 출판사들의 고육지책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것저것 활발히 출간되는 것이 마냥 즐거울 땨름이지만, 작품에 상관없이 출간 자체에 감지덕지하던 시절도 겪어본 독자로서는 조금 걱정이 됩니다. 이러다가 다시 한 번에 무너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이는 일개 독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그저 이런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게 있어 올해는 앞으로 어떤 독자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해였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요 몇 년간 현대 미스터리에 대한 제 관심은 크게 북유럽의 범죄소설과 코지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들 서브장르에 대한 관심은 카린 포숨과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 같은 몇몇 작가들에게 국한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비로소 코지 미스터리 장르의 흐름을 따라갈 의욕과 흥미가 생겼다고나 할까요. 작년까지 집중적으로 읽어 왔던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을 일부러 멀리하고 한 타이밍 쉬어 가는 대신, 서양 미스터리의 최신 조류 중에서도 코지 미스터리 쪽에 하나하나 짚어갈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최근 가장 많이 방문하는 해외 미스터리 사이트가 http://cozy-mystery.com과 www.malicedomestic.org라는 점이 이를 증명하죠.
코지 미스터리 장르는 현재 미국에서 출간되는 미스터리 서브장르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국내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쪽 계열 중에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들의 국내 소개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고요. 그런 점에서 국내에 활발하게 출간되는 작품들을 뒤로하고 굳이 외서 쪽을 기웃거리는 게 좀 바보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알렉산더 매컬 스미스나 돈나 레온,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낸시 피커드에 더해 루이즈 페니, 셔린 매크럼, 재클린 윈스피어 같은 작가들을 알게 된 것은 새로운 소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작가들을 매개로 삼아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도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코지 미스터리에 대한 관심은 비로소 현대 미스터리의 한 조류를 잡아 올라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아직까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고전 미스터리이지만, 아무리 고전 미스터리가 마음의 고향이라 한들 동시대를 호흡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못할 테니까요. 그리하여 한 5년이나 10년쯤 후에는 21세기의 코지 미스터리의 동향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제가 추리소설 독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증거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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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글이 올라오는군요. 왠지 두근두근합니다.
저는 뭐랄까, 한 사람이 책에 대한 애착을 고백할 때 꽤 감동하고는 해요. 이번 글에도 뭔가 뭉클한 데가 있는데요.
그러고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곳이 블로그 정도밖에 없네요. 블로그에서는 은근히 수다쟁이이 되는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