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작가 : 윌리엄 윌키 콜린스 外 역자 : 한동훈 출판사 : 하늘연못 출판연도 : 2008 |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국내 추리소설 출판 시장에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하던 것이 바로 단편 앤솔로지였습니다. 이런 앤솔로지는 다양한 작가 소개에 목말라하는 국내 추리소설 팬들의 욕구를 제한적으로나마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어느 정도 해외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재 다시 이런 앤솔로지를 들춰보게 되면 다양하면서도 쟁쟁한 작가들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2000년대에도 수준 높은 앤솔로지가 출판되고 있습니다. <빨간 고양이 -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 단편집> 같은 경우에는 지금껏 국내에 출판된 최고의 일본 단편 미스터리 앤솔로지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앤솔로지의 시대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보다는 한 작가의 개별 단편집 출간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니까요. 저작권을 그다지 준수하지 않았던 90년대까지와는 달리 국내에서 편집된 앤솔로지의 경우에는 각 작품들을 개별적으로 계약해야 하는 난점도 있고, 무엇보다 국내 추리소설 시장이 그만큼 활발해졌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시장이 커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현상은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테죠.
그런데 이런 경향으로 인하여 서양 고전 단편들이 소개되는 빈도가 줄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일본 쪽 단편이나 서양 현대 작가들의 단편 같은 경우에는 이래저래 소개될 여지가 꽤 있지만, 서양 고전 쪽은 딱 이런 앤솔로지가 아니면 접하기 힘드니까요. 저작권이 풀린 작가들이 꽤 있다는 장점은 앤솔로지를 편집하는 데 있어 분명한 메리트겠지만, 기본적인 판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점 또한 이들 작품의 소개를 저해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과 이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이 당분간 볼 수 있는 마지막 서양 고전 미스터리 단편 앤솔로지일 겁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마지막까지 아껴놓고 있었는데 끝내 꺼내보게 되는군요.
3층 살인사건 - 프랭크 보스퍼
연극으로 먼저 발표되었다는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작품을 읽다 보면 대번에 이건 영락없는 연극이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연극의 막/장 흐름에 따라 나뉘는 챕터 구분, 등장인물들 간의 합으로 이루어지는 대사 장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 같은 모습은 이 작품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5장 부분은 소설로 각색되는 과정에서 추가되었다는 느낌이 대번에 들기도 하고요.
고전 추리소설은 다분히 연극적인 구조를 갖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연극적인 전개도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꽤 재미있어요.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역시 서로 속내를 하나씩 숨기고 주고받는 대화 장면이지만, 연극적 무대장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각 동선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것도 꽤 인상적입니다. 트릭 자체가 시간적 공간적 동선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유감없이 살리고 있는 셈입니다.
데드 얼라이브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윌키 콜린스의 말년의 작품이지만 오히려 초기작의 느낌이 들 정도로 이야기 전개는 압축적이고 거친 느낌이 듭니다. 제가 그동안 본 이 사람의 작품은 거의 장편이었으니 단편에 가까운 이 작품을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등장인물 간의 감정의 흐름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임에도 그런 감정들이 딱히 설득력이 없을 정도로 뜬금없이 형성되거나 풀어지곤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대목이 반전 아닌 반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설마 그걸 노린 건 아니겠죠.
그렇다 보니 등장인물 중 주인공 쪽에 적대적인 사람들의 태도가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내가 상대방에게 던지는 증오라면 모를까, 상대방에게서 받는 적대적인 태도는 이쪽에서야 그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니까요. 그리하여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편 인물들의 행적보다는 '그 사람'의 후일담이 더욱 인상에 깊게 남는 것은 이 때문일 겁니다.
안개 속에서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이른바 라쇼몽 식 변주 같은 이야기입니다. 클럽에 모인 사람들이 차례로 각자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앞서 말하는 사람이 언급하는 사건이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사건과 일정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용무 때문에 클럽을 떠나야 하는 사람의 발목마저 잡아챕니다. 이렇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은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는 점 또한 이런 형식의 작품이 갖는 묘미일 테죠.
런던의 명물인 안개가 분위기를 살리는 핵심 소재이니만큼, 안갯속을 헤매는 묘사나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막막한 분위기를 그려내는 묘사가 꽤 준수합니다. 이야기가 급격하게 점프해서 제자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리드미컬한 밸런스도 훌륭하고요. 이런 스타일에 이런 이야기야말로 추리소설 팬들이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최상급의 유희거리일 겁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버클 핸드백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라인하트의 작품은 예전에 아동용으로 출간된 <나선계단의 비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어떤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 접하는 작가라는 생각을 갖고 접한 이 작품에 대한 인상은 꽤 좋습니다. 무엇보다 한 저택에 들어가서 차근차근 단서를 수집하고 진상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상당히 좋아요. 이런 과정을 보는 재미는 힐다 애덤스라는 주인공 탐정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작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연결됩니다. 짧은 중편 하나로 이런 감정까지 생기다니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짧은 작품이기는 하지만 힐다 애덤스의 첫 등장, 탐정 역을 맡아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 저택 안에서 풍기는 미묘한 위화감, 소소하지만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야기하는 분위기 같은 것들에 대한 묘사가 성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담백하고 깔끔한 느낌의 이야기 진행과 적당한 수위의 서스펜스가 기대 이상으로 결합하는 모습을 보이고요. 라인하트의 힐다 애덤스 시리즈를 원서로라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인 만남입니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 -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언제가부터 서양 고전 미스터리를 읽을 때는 트릭이나 반전보다는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이 코믹하게 얽히는 모습에 더 끌리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후반부에 목걸이를 찾는 과정보다는 전반부에 본격적으로 아노 경감이 사건 조사에 돌입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나 오페라 공연의 묘사 쪽이 좀 더 재미있습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트릭은 너무 많이 봐 왔고, 또 그 특성상 많이 볼수록 그만큼 식상해지는 종류라서요. 저로서는 가면무도회 이야기를 좀 더 해줬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 분량에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일 테고요.
그리하여 몇 년 전에 사놓고 어디에 놓아두었는지도 잊어버린 <독화살의 집>을 드디어 읽을 때가 왔나 봅니다...-_-a
ps.
알라딘 TTB를 걸어놓으려고 이 책 페이지에 가보니 리뷰가 무려 24개나 올라와 있군요. 그다지 많이 팔린 책은 아닌데다 구매자 리뷰가 제로라는 점(물론 다른 곳에서 구입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리뷰가 출간 후 한 달 정도의 기간 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 독자 서평용으로 꽤 배포했으리라는 심증을 굳힐 수 있습니다.
저야 뭐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인 경우 혹평을 쓰기라도 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이쯤에서 <미술관의 쥐>에게 심심한 위로를...;;) 대개는 아예 글 한 줄 안 쓰고 무시해 버리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만에 하나 이벤트로 받은 책이 재미없을까 봐 요새는 아예 그런 독자 서평 신청을 안 합니다. 그리고 이런 독자 서평이 어느 정도의 홍보효과를 갖는지도 의문이고요.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의무적으로 내놓은 독자 서평보다는 정성 들여 작성한 출판사 보도자료 쪽을 훨씬 더 신뢰하거든요.
뭐, 그래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안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조금이라도 있으니 지속적으로 이런 증정 이벤트를 벌이는 거겠죠? 요즘에는 책 한 권도 비싸지만 다른 홍보 방식에 비하면 그나마 금전적 부담이 덜 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면 이런 증정 이벤트는 꼭 띠지 두르는 것과 비슷한 이미지네요.
몇 년 전 영림카디널의 블랙캣 시리즈에서는 해당 작품을 '구입해서' 읽고 서평을 쓰면 시리즈 내 다른 작품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이벤트가 꽤 마음에 들어서 1착으로 신청한 기억이 나는데요. 이런 방식은 최소한 책을 읽은 후 이벤트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이벤트가 처음부터 책을 안겨주는 것보다는 호응이 생길 리가 만무하죠. 이래저래 홍보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말 나온 김에 사족 하나. 오른쪽을 보시면 이 블로그에서 엄선한 미스터리 10편이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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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엄선(?)된 미스터리 10편 중에서 <스몰 플레인스의 성녀>, <밤의 기억들>을 갖고 있네요.
<밤의 기억들>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다가,
우연히 구입한 <마일즈의 전쟁>,<보르게임>에 빠지는 바람에 뒤로 밀렸고_
[보르코시건경'에 단단히 매료되어 한동안 헤어나오질 못했죠. 판타스틱 10월, 12월호에 해피SF까지 구했어요...;;
다아시경'에게도 한참 빠져있었는데 행책의 절판행진에 마음이 씁쓸해요.]
지금은 <블루의 불행학 특강>, <수도원의 죽음>을 동시에 읽고 있어 <밤의 기억들>은 또 뒤로...뒤로~
올해 안에는 마저 읽겠죠.
정말 브로코시건만큼 귀여운 인물이 또 있을까요.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걸 떠나서 순전히 캐릭터 재롱 보는 맛에 이 책을 읽는 것 같아요.
행책은 예전부터 우리 책은 품절은 있을 수 있어도 절판은 없다고 누누히 말해 왔는데, 요즘 사정이 사정인지라 그게 여의치 않은 모양입니다. 대신 <요리장이 너무 많다>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시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