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Q. E. D. 증명종료 32권 작가 : 카토 모토히로 역자 : 최윤정 출판사 : 학산문화사 출판연도 : 2009 |
예전에 몇몇 포스팅에서 마술에 대해 살짝 언급한 적이 있을 겁니다. 단순히 요약하면 마술을 구성하는 트릭을 모르는 편이 마술을 감상하는데 훨씬 낫다는 것이었죠. 이처럼 마술의 트릭을 바라보는 제 시각은 카토 모토히로의 시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C. M. B. 박물관 사건목록> 7권에서 신라의 입을 빌려 "비밀이 드러나면 매직은 빛을 잃게 된다."는 주장을 피력한 바 있는 작가는 <Q. E. D. ...> 32권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매직 & 매직>에서 "마술사는 절대로 트릭을 밝혀서는 안 된다."는 마법사의 철칙을 다시 한 번 제시합니다. 여기에 <구부러진 경첩> 포스팅에서 제가 했던 말을 덧붙여 볼까요. "가장 유명한 신체소실 마술이 거울을 이용한 간단한 트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무슨 이득일까요. 그 알량한 정보와 맞바꾸게 되는 것은 환상과 감동인데요." 표현에만 조금 차이가 있을 뿐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똑같지 않습니까.
마술에 있어 트릭을 모르는 편이 나은 까닭은 마술 공연 자체의 성격에 기인합니다. 이는 추리소설의 트릭과 비교해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죠. 추리소설에서는 트릭이 풀리고 진상이 드러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입니다. 하지만 마술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일이 눈 앞에서 실현되었을 때가 가장 빛나는 순간입니다. 추리소설에서는 불가능 범죄가 일어나면 무언가 교묘한 트릭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추리소설을 즐기는 정석적인 사고의 흐름입니다만, 마술에서는 트릭의 존재는 배제한 채 눈앞에 펼쳐지는 경외로운 모습에 경탄하는 것이 마술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죠. 마술을 보고 '와, 저걸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그것은 트릭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다는 마술사의 기량에 대한 찬사로 해석하는 것이 마술사에게나 관객에나 좀 더 이득되는 일일 겁니다.
또한 추리소설의 트릭과 마술의 트릭은 그 성격을 달리합니다. 추리소설의 트릭은 결말에 가서는 낱낱이 밝혀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트릭은 수수께끼의 성격을 띠는 한편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이거나 메인 스토리와 밀접하게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 추리소설의 트릭은 트릭만을 위한 트릭, 즉 추리소설로서는 함량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마술은 추리소설과는 달리 관객을 효율적으로 속이는 데 모든 촛점이 맞춰지기 때문에 관객이 바라보는 공연의 흐름과는 철저하게 분리된 영역에서 작동합니다. 그리하여 마술에서는 관객의 시선을 돌리는 단순한 손장난에서부터 정교하고 복잡하게 제작된 기계 장치까지 그 어떤 방식이라도 허용됩니다. 이처럼 마술에서의 트릭의 존재 가치는 철두철미한 실용성이기 때문에 미학적인 요소는 전혀 고려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추리소설의 트릭을 풀어냈을 때 얻는 희열감과는 달리, 마술의 트릭을 알게 되면 허무함밖에는 남는 것이 없죠.
20대 중반 이후의 분들이라면 예전 <호기심 천국>에서 마스크를 쓰고 마술의 트릭을 하나하나 폭로하던 마술사를 기억하실텐데요. 거기서는 이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를 다른 마술사들의 살해 협박을 받아서 정체를 감추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습니다만, 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그 이유를 짐작해 보면 마술의 트릭을 폭로하는 마술사는 그 신비한 아우라를 잃게 되어 관객들은 더 이상 그 마술사의 공연에 경외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자신의 입으로 마술은 모조리 트릭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마술을 무슨 재미로 보겠어요. 마술을 트릭에 의한 단순한 속임수로 격하시키는 마술사가 과연 마술 공연을 제대로 연출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마술의 트릭을 폭로하는 행위 자체의 약발도 그리 오래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이런 메시지에 비하면 이야기 자체는 평범한 편입니다. 아니, 메시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와 트릭을 일부러 평범하게 구성했다는 쪽이 더 맞겠죠.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살짝 반칙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애초에 이 에피소드에서는 크게 고려해야 할 부분도 아닙니다. 저야 제가 평소에 주장하던 이야기를 만화로 보게 된 것이니만큼 낄낄대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봤습니다만, 그게 너무 제 주장과 얽혀 있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먹힐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는 좀 난감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상이 밝혀지는 막판의 두 쪽은 이 만화 사상 가장 유쾌한 내용일 겁니다. 브라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작품에서 작가가 가장 함정에 빠지기 쉬운 점은 바로 어려운 내용을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각색하다 보니 정작 그 내용 자체가 허술해지는 것이죠. 심지어는 작가의 취재 자체가 허술해서 아예 독자들의 눈높이 아래에서 방황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면 작품 속에서 전문가랍시고 등장해서 일반 상식 수준의 내용을 대단한 지식인 양 읊어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바로 이 작가의 다른 작품 <C. M. B. ...> 10권의 <그 차이 6천만 년> 에피소드가 그 대표적인 예이죠. 굳이 방사선 탄소까지 가지 않더라도 세상에 습곡과 단층의 개념에 대해 모르는 고고학자가 어디 있답니까. 이거 아마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거죠? 천재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주인공을 묘사하려다 이런 실수를 범하는 작가가 의외로 많아요.
<Q. E. D. ...> 또한 이런 지적에서 항상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 이 만화에서는 종종 수학적 개념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토마 또한 수학의 천재라는 설정이고요.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런 수학적 개념이 사건이나 트릭에 직접적으로 연된된다기보다는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비판을 들을 소지가 적다는 것입니다. 이 만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에피소드인 <Serial John Doe>만 봐도 이 작품에서 수식을 다루는 방식은 수학적이라기보다는 미학적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인수분해 공식보다 복잡한 수식만 나오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독자가 상당수라는 점 또한 이 작품에서 수학적 개념이 고고하게 등장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만.
<레드 파일> 에피소드는 경제 개념은 이 작가가 <로켓맨>에서 한 번 써먹은 적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경제 개념을 다루는 방식을 앞서 말한 관점에 비추어 평가해 보면 아슬아슬 합격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계자들의 사고방식이 너무 좀스럽고 단순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이는 이 만화의 주된 소비 계층을 고려하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보이고요. 기초적인 개념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 또한 장점이 됐으면 됐지 단점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필요한 경제 개념은 딱 거기까지이고, 실제로 작용하는 복잡한 메커니즘은 아예 언급하지 않고 사물화시켜 단순하게 다루고 있으니까요. 후대에 나온 작품이니만큼 <로켓맨>의 에피소드보다는 이쪽이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야기야 좀 더 소소하고 사건의 구조도 간결하지만, 그게 딱 이 만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수위이니 딱히 탓할 것도 없죠.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눈길을 확 끄는 점이나 뚜렷한 장점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살인사건에서 수수께끼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또한 이야기를 밋밋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고요. 굳이 분류하자면 31권의 <눈 속의 악마> 스타일의 에피소드일 텐데, 그보다는 좀 더 나은 이야기라는 점이 위안거리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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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차리고 돌아와서, 문득 떠오르는 바 있어 마지막에 [쿠로호시 씨가 한 번쯤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던. '트릭을 밝혀도 모두가 기뻐하는 마술' 이야말로, '추리물'의 완벽한 정의가 아닌지요? :] 라는 내용을 추가하고 트랙백을 읽으러 왔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한 줄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던 것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써 주셨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은, 소재가 제게는 상당히 취향 밖이라서요. ^^; 하지만 어떤 의미로 이 에피소드의 스타일은 [Q.E.D]의 정석 중에 정석인 것 같기도 해요. 장기 연재에서 캐릭터와 스타일을 지키는 것은 나름 중요한 일이고 해서...:]
이 작품도 초반 몇 권의 시행착오를 거쳐 그 스타일을 참 영리하게 잘 잡은 편이죠. 이렇게 고유한 스타일을 확립해 놓으니 몇몇 에피소드에서 덜컹거리는 일이 벌어져도 그다지 타격도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