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기만의 매력 - 미션 플래츠

[아불라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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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미션 플래츠
작가 : 윌리엄 렌데이
역자 : 최필원
출판사 : 북@북스
출판연도 : 2006년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 정도라면 스포일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언급하나 안 하나 전혀 차이가...;;;)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냥 제 블로그의 글을 몇 개만 보면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유독 자기검열이 심해요. 이때 자기검열이란 속마음을 꼭꼭 감추고 겉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속내를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더 심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몇 년 전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확 줄었어요. 예전에도 주변 이야기라든지 개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가 그리 많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근래에는 거의 추리소설과 야구 이야기 딱 두 가지만 가지고 블로깅을 하는 것 같아 블로그가 좀 단조로워진 것도 사실이고요.

그런데 이렇게 개인 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딱히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분리시켜 익명성을 유지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적당히 느슨한 편에 속합니다. 친한 친구들은 대개 제 블로그 주소를 알고 있고(보통 안 들어와서 그렇지-_-), 가장 활동을 활발히 했던 인터넷 커뮤니티는 실명을 걸고 활동하는 곳이었으며, 심지어는 대부분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동일한 닉네임을 쓰며 아이디도 거진 같습니다. 결국 개인 신상에 대해 말을 아끼는 건 딱히 온라인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성격이 이렇게 생겨먹어서라는 거죠.

그래서 친한 친구들은 자신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제 사적인 신상을 거의 묻지 않습니다. 물어봤자 애가 슬쩍 말 돌려버릴 거라는 사실을 알거든요. 저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가끔 거짓말을 하곤 하는데, 이는 제 삶을 이것저것 치장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상대에게 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나눌 화젯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요. 제 이야기를 떠벌리지 않는다는 건 상대방의 이야기를 애써 캐묻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내 이야기와 상대방의 이야기 양쪽 모두에 소홀해지면 제삼자에 대한 이야기 또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가장 재미있는 화젯거리라는 험담은 애초에 소재에서 빠지게 되고요. 결국 관심사가 일부 겹치지 않는 한 저는 그리 재미있는 대화 상대가 못 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서 제가 내보인 점만 가지고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제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낸다는 거죠. 사실 그런 모습이 대개는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아요. 얼마 전에는 제가 여자라고 확신하는 분이 댓글을 남기기도 했으니까요...-_-a 하지만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 글에서 엿보이는 이런저런 모습들을 연결하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어긋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히 맥락을 부여하는 방식이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물론 어차피 불완전한 정보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니만큼 종착지에 가서는 저만큼 어긋나 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걸 가지고 특별히 탓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구성되는 것이 인터넷상에서의 제 캐릭터라면 순순히 받아들일 의향도 있고요.

<미션 플래츠>를 두고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이유는, 바로 이런 모습이 이 작품에서 1인칭 서술 방식이 독자들에게 작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1인칭 서술이 3인칭 서술에 비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개성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데요. 이런 스타일의 추리소설은 고전에서부터 최신 미스터리에 이르기까지 국내에도 여럿 소개되기는 했습니다만, 그 구체적인 방식만큼은 그중 가장 마음에 듭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1인칭 서술을 이끄는 주인공 캐릭터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어차피 이 작품은 독자를 속여먹기 위해 교묘하게 구성되어 있는 만큼 속아 넘어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애초에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은 1인칭 서술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고(물론 작품을 다 읽어야 할 수 있지만), 주인공의 주변에 그런 캐릭터를 배치했다는 것 또한 이러한 심증을 확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두고 진상에 도달하는 과정이 공정한지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의외로 현대 스릴러를 두고 공정한 단서를 제공했는지를 문제 삼는 분들이 많은데, 애초에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복선이야 부족하지 않게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건 진상을 알기 전에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독자들의 오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단서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아이러니 정도이죠.

그리하여 이 작품은 독자들이 알아서 말려들게 되는 구조입니다. 작가는 주인공을 특별히 교묘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다만 적당히 의뭉스럽게 만들어서 군데군데 공백을 배치해 놓을 뿐이죠. 그 공백을 인지하고 이를 채워넣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역할입니다. 이 과정을 보고 작가가 대단히 교묘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독자들은 이러한 공백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눈썰미가 뛰어나 뭔가 핵심을 발견했다고 지레짐작해버리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작가가 그릇된 시나리오를 던져주기 전에 독자들은 저만치 자신만의 시나리오로 공백 사이의 튼튼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렇게 독자들을 작가의 의도대로 휘두를 수 있는 이유는 주인공인 벤 트루먼이 이러한 서술 방식에 딱 들어맞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권태로운 척 해봤자 이 인간은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영락없는 20대 미국 젊은이인 걸요. 이러한 모습은 벤이 다른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대번에 드러납니다. 벤의 시선 속에서는 그의 연인들의 모습이 대번에 노곤노곤하게 바뀌는 것도 그렇고, 여러 번에 걸쳐 묘사되는 갱단 두목 또한 묘하게 리얼리티에서 벗어난 인공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리하여 작가가 아무리 군데군데 함정을 파 놓았다 한들, 독자로서는 그러한 덜컹거림은 주인공의 특징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 작품의 대부분의 주요 캐릭터가 다 이런 식이에요.

껄끄러운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가끔은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저이지만(이게 안 되는 상대랑은 보통 사귀게 되더군요...-_-a), 이 작품 속의 캐릭터들은 자신에게 크게 위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일단 털어놓고 봅니다. 질척질척한 슬럼가를 다루고 있는 스릴러로서는 이질적으로 친절하고 우아한 갱단 두목이나 발랄하고 상큼한 형사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털어놓는 각종 비밀들은 그 무게에 비해 의외로 술술 풀려나옵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다른 꿍꿍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하고 솔직하며 나이브합니다. 이들의 속내가 드러나도 이들은 여전히 이런 모습일 테고, 그게 딱히 위선적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겁니다. 솔직하다는 것은 여러 층위에서 해석이 가능합니다. 흉금을 털어놓으면서 아주 작은 거짓말 하나를 섞을 수도 있고, 거짓말 하나 하지 않으면서도 의도적인 생략을 통해 잘못된 추론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치명적인 행위에 대한 허심탄회한 고백도 그 의도의 진정성을 섣불리 담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문에 난 총구멍을 통해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믿지만, 때로는 방 안 대신 문 자체를 살펴보아야 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무시합니다. 하지만 그런 작은 지점에 매번 당하면서도 우리는 이런 모습들을 싸잡아 솔직하다고 부릅니다. 때로는 이러한 모습에 반박하고 싶어도 딱히 어느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할지 난감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적당한 솔직함이 발화자 자신에게 돌아오면 아주 훌륭한 자기기만이 됩니다. 적당한 사실의 나열이 그 자체로 얼마나 활발한 자기복제와 확장이 가능한지 알게 되는 순간 화자는 자신이 의도했다는 것도 잊은 채 반쯤은 자신과 닮고 반쯤은 새로 탄생한 사실에 포섭당합니다. 완전히 속아 넘어가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가끔씩 드는 위화감은 인생의 허무한 부분으로 돌려버려 더 이상 사고하기를 거부하고, 절반쯤 일치하는 부분으로 자기위안을 삼으며 긍정하는 방법은 그 어느 때라도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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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04/08 0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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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robat [2009/04/12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심사위원이 정말 난감했엤어요. 두 작품은 스타일이 아예 다른데다가 분명한 장점이 있고, 또 장단점이 서로 겹치치도 않잖아요? 둘 다 해당 장르에서 두드러지게 튀는 작품은 아니어도 일정 부분의 성과는 올리고 있기도 하고요.

      결국 어느 쪽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들어냐 정도로 결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굳이 하나를 꼽자면 <수도원의 죽음>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2. 비밀방문자 [2009/04/09 0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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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robat [2009/04/12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좀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교차비교가 가능하겠지만 이건 또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그런데 <미션 플래츠>가 좀 더 발랄한 맛은 있으니 신인작가를 평가하면서 이 부분에서 좀 더 좋은 평가를 얻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