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워지면 일어나라 - 샬레인 해리스

[아불라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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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작가 : 샬레인 해리스
역자 : 최용준
출판사 : 열린책들
출판연도 : 2006



다 읽고 나서 돌이켜 보건대 이 책은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접근하는 편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 중 상당수가 여기에 기인하다고 보니까요. 책을 고르기 전에 꼼꼼하게 사전정보를 캐내어 잘 말려서 두세 번씩 우려먹기까지 하는 저로서는 드문 일이었습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 알고 있었던 것은 뱀파이어, 코지 미스터리, 할리퀸 로맨스, HBO의 신작 드라마 <트루 블러드> 정도의 몇몇 키워드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애초에 이 책에 손을 댈 사람과 쳐다도 보지 않을 사람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습니까? 게다가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고르는 것은 상당히 안전한 선택일 겁니다.

오히려 이 책을 읽기 전에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오독의 소지가 발생할 우려가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의 핵심 설정인 뱀파이어의 존재에 대해, 첫머리부터 흑인이나 동성애자의 알레고리라고 못박아 버리는 건 너무 뻔해서 안일한 독서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할지라도 한 귀로 흘려 머리속에서 완전히 비워버리는 것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어디 가서 비유를 들어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그 비유를 쓰는 목적과 맥락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그 비유가 대상과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되는지만 신경 쓰는 사람들이 꼭 있죠. 책을 읽으면서 그런 태도를 취하게 될 가능성이 크니까요.

<어두워지면 일어나라>는 미국의 미스터리 작가인 샬레인 해리스가 2001년부터 발표하기 시작한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 혹은 서던 뱀파이어 미스터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추리소설 팬으로서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할 이력은 2002년 앤서니상 페이퍼백 부문 수상작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앤서니상 페이퍼백 부문 수상작으로는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품입니다. 작년에 할런 코벤의 <위험한 계약>이 나오면서 총 두 편의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되었고요. (그러고 보면 앤서니상 수상작 목록을 보고 구입했다가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James Deans>도 그렇고 앤서니상에서 특히 사랑받는 듯 보이는 Laura Lippman의 작품도 사놓고는 내팽개쳐두고 있죠. <Still Life>를 안 산 것은 번역되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소식 때문에...;;)

분명한 것은 샬레인 해리스는 이 작품을 집필할 때 분명 시리즈물을 염두에 두고 썼을 거라는 점입니다. 합성혈액이 발명되어 뱀파이어들이 커밍하웃하고 인간 사회로의 편입을 시도한다는 설정은 분명 한 편에서만 써먹기에는 좀 아깝죠. 샬레인 해리스는 이 작품 발표 이전에도 어느 정도 인지도 있는 작가였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좀 멀리 내다보면서 작품을 썼으리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이 가고요.

그래서 이 작품은 소설의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와는 조금 다른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수키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 작품의 큰 줄기를 그립니다만, 읽다 보면 그 살인사건은 그저 사이드 스토리 정도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은 첫 연인인 빌과의 만남에 의해 수키 자신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주변 남자들과의 미묘한 관계들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메인 스토리상의 클라이맥스가 없어요. 에릭과의 에피소드가 개중 가장 클라이맥스에 가깝다고는 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메인 스토리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고요.
 
그리하여 막바지쯤 가다 보면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게 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는 독자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는지 결말을 그리는 방식 또한 솔직 담백하기 그지없습니다. 막판에 범인은 수키마저 죽이러 왔다가 어찌어찌 잡혀서 그냥 다 불어요. 나, 원...;; 뭐, 그 와중에 나름 우여곡절이 있긴 한데 그보다는 초반부에 수키가 쇠사슬 휘두를 때가 훨씬 더 박력이 넘치고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보면 확실히 이건 장기 시리즈물의 도입부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여전히 재미있는 건 수키 스택하우스의 캐릭터 때문이고, 수키가 바라보는 자기 동네와 뱀파이어 커뮤니티는 꽤 흥미롭습니다. 타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을 오히려 장애로 인식해서 타인과의 접촉을 꺼려왔던 수키가 막상 타인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되자, 수키가 바라보는 시각과 타인에 대한 포지셔닝이 꽤 흥미진진하게 그려집니다. 아무리 자신이 마음을 읽을 수 없는 뱀파이어 빌의 존재가 수키의 적극적인 태도를 이끌었다고 하나, 이 캐릭터의 기민하고 당차며 매력적인 활동들을 보고 있자면 지금까지 왜 그렇게 껍질 속에 갇혀 살아왔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이니까요. (사실 웅크리고 살아왔다는 것도 '설정상' 그렇게 되어 있을 뿐이죠.)

이말인즉슨, 이 시리즈는 수키 스택하우스를 원톱으로 하여 수키를 둘러싼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포진시킨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뱀파이어 빌이 수키의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이 시리즈에서는 두 사람의 연인이라기보다는 수키와 수키의 연인 쪽의 구도에 더 가깝죠. (판타스틱 9월호에 실린 단편을 보면 그런 심증이 더 확고해집니다.) 에릭과 샘이 아무리 강렬한 개성을 갖고 수키의 주변을 맴돈다 할지라도, 이들 또한 수키의 시선에 의해 캐릭터가 형성되기 때문에 결코 수키와 대등한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요.

물론 이 작품이 수키의 캐릭터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뱀파이어를 비롯한 다채로운 존재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이 세계관의 매력이 퇴색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키 또한 그러한 존재 중 하나인 만큼, 수키라는 캐릭터 자체가 이러한 세계관에 빚을 지고 있다고 보아야겠죠. 다만 이 작품에서 그러한 세계관보다 수키의 캐릭터가 좀 더 부각되는 것은 아무래도 시리즈를 여는 첫 작품인 탓이 크다고 보입니다. 재미있는 작품이기는 해도 그러한 점에서 아쉬움은 남고, 이런 아쉬움은 이후 작품들이 언제 국내에 소개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좀 더 크게 다가옵니다. (<트루 블러드> 시즌 2 제작이 확정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소개될 수 있는 가능성은 좀 커지겠군요.)


ps. <트루 블러드>를 봐야 할까요? <식스 핏 언더>는 제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던 시절 봤던지라, 애가 완전히 박살이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를 만든 알란 볼이라는 인간이 내놓은 신작이 샤방샤방할 리는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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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11/16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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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비밀방문자 [2008/11/16 12: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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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crobat [2008/11/17 0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마침 제가 산 작품도 그거...;;;;;;

      <스몰 플레인즈의 성녀>는 아가사 상 수상작 말씀하시는 거죠?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역사추리소설일 거라 착각하기도 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