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웰 래거시는 인디 게임 제작자인 데이브 길버트(Dave Gilbert)에 의해 200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Pig-Min과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재직했던 경험이 있군요. 유대인인 데이브 길버트는 한국 생활에서 주변에 같은 민족이 없다는 것에 상당한 외로움을 느껴, 뉴욕으로 돌아가자 <Shivah>라는, 이른바 '랍비 누아르'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블랙웰 레거시는 바로 <Shivah>에 이어 두 번째로 발표된 인디 상용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중소 신문에 책 리뷰를 기고하며 생활을 꾸려나가는 로잔젤라 블랙웰은 정신병원에서 25년 동안 갇혀 지낸 고모, 로렌 블랙웰의 유골을 들고 허드슨 강변에 홀로 서 있습니다. 유일한 혈육을 떠나보내는 그녀의 마음속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이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쓸쓸함에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음에도 절대로 고모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당혹스러움이 겹친 까닭이지요. 로잔젤라는 집에 돌아와 고모가 남긴 유일한 유품인 편지 묶음을 읽으면서, 자신의 가계에 무언가 비극적인 혈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과, 이러한 유전의 이면에는 '조이'라는 존재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감지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두통과 함께 말이죠.
정신병원 의사에게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고모와 할머니,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오간 편지도 읽어 심신이 피곤한 로잔젤라는 오늘 하루는 푹 쉬면서 보내려고 하지만, 일손이 부족한 신문사 편집장은 그녀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습니다. 편집장은 자신은 프리랜서이지 정식 기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그녀를 못 들은 척하면서, 그날 오전 발생한 조앤 셔먼이라는 NYU 대학생의 자살사건을 취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이 대학 졸업생이기도 한 로잔젤라는 내키지 않은 발걸음을 떼어 취재에 나서지만,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간신히 취재를 마치고 기사를 송고한 로잔젤라 앞에 무언가 이상한 존재가 나타납니다.
그 유령 같은 존재는 기절했다가 깨어난 로잔젤라 앞에 여전히 서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이 말론. 바로 미친 것으로 알려진 할머니와 고모에 관한 이야기에 함께 언급되곤 하던 존재인 것이죠. 순간 그녀는 3대에 걸친 악몽의 전조를 예감하지만, 이 유령은 의외로 차분하면서도 하드보일드 탐정 흉내를 내며 그녀를 설득합니다. 조이가 로잔젤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이며, 왜 그는 할머니와 고모에 이어 그녀의 앞에 나타난 것일까요. 로잔젤라는 조이의 존재에 관한 진실을 처음에는 거부하지만, 점차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앞에 떨어진 미스터리를 파헤쳐 나갑니다. 아주 가끔은 조이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말이죠.
스크린 샷에서도 알 수 있듯, 이 게임의 그래픽은 90년대 초반 게임을 연상시킬 정도로 저해상도의 소박한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작품 내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데는 그리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만 640x480의 해상도이다 보니 게임 초반의 편지 묶음을 읽을 때는 글자가 일부 깨져보이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딱히 구닥다리 그래픽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 묘사가 잘 되어 있어요. 뭐, 저는 게임 그래픽에 별로 신경을 안 쓰는 타입이라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래픽에 비해 게임상의 모든 대사는 기본적으로 음성녹음이 되어 있고 각종 효과음이나 배경음악 또한 상당히 뛰어날뿐더러 이를 사용하는 연출 또한 상당히 훌륭해서, 각 장소의 분위기 묘사나 사건의 진행에 현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 밝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은 이 게임의 미묘한 분위기는 이러한 배경 음악과 효과음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게임 플레이 자체는 그래픽 어드벤처로는 가장 간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함을 자랑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특별한 인터페이스나 하위 메뉴 생성 없이 그저 마우스 버튼 두 개를 '관찰'과 '실행'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입니다. 아이템 자체도 게임 전체를 통틀어 열 개도 채 안 되고, 아이템을 조합하는 퍼즐 또한 딱 한 번 등장할 뿐입니다. 게임 자체가 짧기도 하지만, 이러한 단순한 진행 방식과 퍼즐은 게임의 난이도를 크게 떨어뜨려 놓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게임의 분위기와 스토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호평을 할 수도, 난이도가 지나치게 낮아 오히려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플레이타임이 너무 짧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에는 대개 동의할 테지만요.
그런데 이 게임은 추리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고, 이는 대부분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정보들은 로잔젤라의 노트에 정리되고, 게이머는 이러한 정보들을 서로 연결시켜 새로운 정보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서로 어긋나는 정보들을 결합시키면 피신문자의 거짓 증언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생성된다든지, 서로 다른 두 인물의 이름을 연결시키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단서가 떠오른다든지 하는 방식이 게임 시스템상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즉, 이 게임의 핵심은 아이템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얻어낸 정보들을 조합하여 것이죠. 이 게임에서는 '추리'라는 요소가 게임상에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이 게임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게임의 고유한 개성을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의 분위기가 상당히 마음에 듭니다. 기본적인 설정과 배경은 그 자체로 비극이고 로잔젤라 앞에 닥친 미스터리 또한 상당히 무거운 내용입니다만, 게임을 이끌어가는 본 이야기 속에서는 잔잔한 희망이 은근히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 외로움을 타면서도 스스로를 회의하는 로잔젤라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탐정인 조이의 조화는 생각보다 잘 어울립니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조이의 개성이 좀 튀긴 하지만, 조이의 마초스러움을 로잔젤라가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에 종종 엿보이는 조이의 경박함이나 클라이맥스 부분의 폭력적인 모습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습니다.
이 게임에서 느껴지는 유일한 단점은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 플레이타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입니다. 게임상의 좋은 아이디어가 충분히 심화되지 못하고 맛보기로만 끝나버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흡사 새로 런칭되는 드라마의 파일럿 프로그램 같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데이브 길버트는 이 게임을 시리즈화 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고, 이미 이 게임의 프리퀄 격인 <The Blackwell Unbound>가 발표되었으며 후속작 역시 제작 중이라고 하니, 이 시리즈 전체를 하나의 일관된 작품으로 보아도 크게 무리는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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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robat님, 여기 그림들 제 홈에 퍼 가 올려도 될까요?..그냥 개인잡글에 쓰일건데요. 출처 표기하고 링크를 걸까 하는데, 링크 싫으시면 말씀해 주시고..어, 뭐 그냥 전부 싫다셔도 사실 별 문제는 없어요^^ 편히 답해주시길.
그럼요.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제가 캡쳐해다고는 해도 키보드 몇 번 눌렀을 뿐인데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을테고요. 링크 같은 것도 마음 내키는 대로 해 주시고요.
제작사 홈페이지(http://www.wadjeteyegames.com/index.html)에 가보시면 이 게임뿐 아니라 후속편이라든지 하는 것들의 스크린샷도 볼 수 있습니다. 구글 같은 곳에서 <Blackwell Lebacy>로 검색해 보시면 좀 더 다양한 이미지들을 찾을 수 있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