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독 - 미야베 미유키

[아불라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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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름 없는 독
저자 : 미야베 미유키
번역 : 권일영
출판사 : 북스피어
출판년도 : 2007


미야베 미유키는 이 작품에서 크게 두 가지 시도를 합니다. 첫째는 <누군가>의 후속편인 이 작품을 통하여 스기무라 사부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를 정착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대표작들인 <이유>와 <모방범>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이름 없는 독>은 미야베 미유키로서는 최초로 시도하는 시리즈물이고 이 작가의 최고 걸작들로 평가받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맥을 잇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것은 자못 흥미롭습니다.


1. 시리즈물로서 <이름 없는 독>

<누군가>를 읽을 때 이미 이 작품이 후속작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그 작품을 집필할 때 애초에 시리즈물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리즈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것은 <이름 없는 독>에서였고 <누군가> 만으로는 후속편에 대한 생각을 하기 힘드니까요. 이미 일본에서 후속편이 나온 상황에서 전작을 읽었기 때문에 후속편에 대한 짐작과 기대도 이래저래 할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누군가>는 스기무라 사부로의 소심함 극복기로 완결된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구축을 위해 몇 가지 시도를 합니다. 그 중 연재 당시에는 빠져 있다가 단행본 발매시에 추가되었다고 하는 작품 말미 부분은 이에 대해 너무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어 조금 어색한 느낌도 들기도 합니다. 굳이 그런 장면을 추가하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것이, <이름 없는 독> 에는  전작인 <누군가>와의 구조적 연결고리를 취하면서도 앞으로의 전개를 위한 포석과 새로운 등장인물을 내세우는 등 시리즈물로의 변화를 위한 장치가 작품 전체에 걸쳐 고루 존재하거든요.

먼저 작품 구조상 이 작품은 <누군가>와 대단히 흡사합니다. 작품 자체는 전작에 비하면 구조면에서 꽤 확장된 편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기본적인 얼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의뢰인이 2명의 여성이라는 점은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만, 스기무라와 의뢰인의 관계가 형식적으로는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를 취한다는 점은 여전합니다. 스기무라가 사건을 파헤쳐 나가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편집자 활동의 연장처럼 보이고 그의 일상 생활과 마찬가지로 사건 조사에 있어서도 상당히 성실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 때 편집자이자 탐정으로서의 스기무라는 주로 관찰자로서 행동하는데, 이는 미야베 미유키가 편집자를 보는 방식일지도요.

그리고 스기무라는 전작에 이어 사건의 피해자와 비슷한 사고를 겪습니다. 뒷부분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이는 스기무라가 피해자와 동화하는 과정이며 이로써 스기무라는 타인이 겪은 사건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동화의 과정이 주는 의미는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에서는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누군가>에서는 이 사고로 인하여 가지타와 이마다 회장 사이의 유대관계의 구도가 스기무라에게 그대로 투영됩니다. 스기무라로서는 가지타에게 자신을 대입하면서 장인과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가지타 사건은 자신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건임에도, 스기무라에게 이 사건은 철저히 개인적입니다.

반면 <이름 없는 독>에서는 스기무라는 후루야 아키토시의 살인사건을 조사하지만 이는 전작과는 달리 피해자의 삶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피해자와의 감정적인 유대관계 또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피해자인 후루야 본인은 뒷전이라고 느낄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좀 더 많은 비중이 할애되어 있죠. 대신 이 작품에서 스기무라가 겪는 사고는, 별다른 풍파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스기무라가 이른바 '사회의 독'과 본격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부인 잘 만나 편안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스기무라라 할지라도 이러한 생면부지의 타인에 의해 자신의 삶이 파괴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메세지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두 작품에서 스기무라가 겪는 사고는 이처럼 외형적으로는 동일한 과정을 취함으로써 시리즈물로서의 일관성을 확보하지만, 각 작품에서 각각의 사고가 갖는 의미는 전혀 다르게 설정되어 각 작품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다음 작품이 발표되더라도 전작들처럼 스기무라가 피해자가 겪은 사건을 체험하는 일은 여전히 일어나리라는 짐작이 가능합니다. (나호코의 심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벌써 들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동화의 과정은 스기무라는 탐정 일을 업으로 하는 프로페셔널이 아니라, 개인적인 호기심 혹은 사명감에 의해 사건을 파헤치는 아마추어 탐정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이 작품에는 주목할 만할 인물이 두 명 등장합니다. 스기무라보다 훨씬 더 탐정에 가까운 사람들이죠. 한 사람은 진짜 탐정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잘 나가는 저널리스트입니다. 기타미 이치로는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전문 사립탐정이고 그가 능력이나 경력 또한 녹록치 않은 것으로 묘사됩니다만, 사실상 이 작품 속에서 그가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타미의 역할은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기무라가 탐정으로 나서기를 결심하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아니, 스기무라가 탐저으로 나서기를 결심한다기 보다는 기타미의 역할을 물려받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군요. 이름만 봐도 이치로(첫째 아들) - 사부로(셋째 아들) 아니겠어요.

반면 아키야마 쇼고는 이후 작품에서도 계속해서 스기무라와 콤비를 이루지 않을까 기대되는 캐릭터입니다. 굳이 <누군가>에서 긍정적으로 등장했던 시이나를 비슷한 성격의 고미부치로 대체한 이유는 바로 아키야마의 등장을 위한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굳이 따지자면 스기무라는 탐정의 성격이라기 보다는 조수의 성격이죠. 그에 비해 아키야마는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탐정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기무라보다 더 강한 성격에 머리도 더 뛰어나 보이고 행동력까지 출중하죠. 여러모로 스기무라보다는 탐정 역할에 더 알맞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게 보면 아키야마는 활동적인 조수 역할에도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스기무라가 지나치게 착하다는 점만 빼면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의 관계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스기무라의 직업은 편집자이고 아키야마의 직업은 작가라는 사실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야 현역 작가이니 누구보다도 편집자와 작가와의 관계를 잘 알 테고, 그러한 점이 앞으로의 두 사람의 관계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가 자못 흥미롭습니다. 두 편의 작품에서 스기무라가 사건에 관여하는 모습은 편집자로서 의뢰인의 글에 조언을 해 주는 방식으로 드러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가인 아키야마가 사건에 참여하는 방식은 앞으로 어떻게 그려지게 될지 흥미가 동합니다. 이 작품에서는 스기무라가 거의 일방적으로 아키야마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과연 다음 작품에서는 어떻게 달라지게 될까요.

2. 사회파 추리소설로서 <이름 없는 독>


아래 글을 읽고 <화차 (미야베 미유키)>를 읽게 된다면 아마 초반부에 범인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범인의 정체가 중요한 작품은 아니지만, 앞으로 <화차>를 읽으실 분들은 주의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는 독> 또한 중요한 내용은 피하려 노력했지만, 결말 부분을 제외한 기본적인 얼개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최고작들을 꼽을 때 그 목록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화차>, <이유>, <모방범>으로 이어지는 사회파 추리소설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보통 이 세 작품을 한데 묶어서 언급하곤 하지만, 저는 <화차>는 <이유>나 <모방범>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형성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간적인 간극이겠지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되었던 <이유>와 <모방범>에 비해 <화차>는 비교적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작에 속하는 작품이고,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범죄와 범인, 그리고 그 주변의 삶을 다루는 방식은 다른 두 작품들과 일정 부분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 작품들에 대한 선호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범인에 대하여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여지는 <화차>의 '그 사람'이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단정지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화차>의 범인이 작품 속에 실제로 등장하는 빈도는 다른 작품들의 범인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지만, 작품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느 작품보다도 클 뿐더러 독자들과의 거리 또한 가장 가깝습니다. 반면 범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화차>에 비해 <이유>와 <모방범>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자신의 시선을 일정 부분 피해자와 사건 관계자들, 심지어는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돌립니다. 이로 인하여 이 두 작품에서는 등장인물들이 급격히 증가하며 이들 모두 어느 정도 스스로의 사연을 가지고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 작품에서는 실질적인 주인공이 모호해지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작품에서는 범인보다 피해자에 더 중점을 두고 사건을 저지른 주체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하여 힘겨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다루고 있음에도, <화차>는 이후 발표된 이 작품들보다 훨씬 더 감상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반면 <이유>와 <모방범>에서는 종종 드러나는 감정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냉정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지요. 제가 <이유>를 가장 좋아하는 점은 미야베 미유키가 사건과 그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다 훨씬 더 넓어지고 세심해졌음에도, 이처럼 어느 정도 냉정하게 거리를 두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를 평할 때 종종 쓰이곤 하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라는 말을 온전히 적용시킬 수 있는 작품을 사회파 추리소설에 한정해 본다면 그것은 아마 <화차> 정도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나 <모방범>을 읽고 '뭐가 따뜻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라는 독자들의 불만이 종종 들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요. <화차>에서는 궁지에 몰린 범인의 사정을 통해 사회를 바라보았다면, <이유>와 <모방범>에서는 범인의 사정은 섣불리 건드리지 않고 그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다룹니다. 두 방식 모두 그리 새로운 방식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양쪽 모두 각각의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미야베 미유키에 끌리는 이유 또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추리소설 팬들에게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인간의 증명 (모리무라 세이이치)>을 읽고 너무 화가 나서 한동안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사건을 만들어 내어 이를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 주장하고, 이에 대한 진단 또한 나름대로 설파하며, 그에 대한 단죄까지 내려버리는 작품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었거든요. 이에 반해 <화차>는 범인의 자취를 끈질기게 추적하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두고 붙잡으려 하는 대신 목소리를 들으려 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이유>는 여러 목소리를 들려주고 이를 관통하는 확고한 주제의식은 있지만, 그 주제는 독자에 대한 질문으로 표현되지 섣불리 단정짓는 시도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 없는 독>은 또 다릅니다.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가 사회를 그리는 방식은 <화차>의 방식도, <이유>나 <모방범>의 방식도 아닙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기존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받았고, 그래서 "세상이 변해버려서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 오지 않을까, 아니 이미 온 게 아닐까, 내가 쓰는 게 젊은 독자들로부터 '고리타분하다'는 평을 듣는 게 아닐까 두려워요" 라는 인터뷰가 단박에 이해되었던 거지요.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이런 고민은 <모방범> 이후 갑자기 생겨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고민의 흔적은 이미 <화차>와 <이유>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화차>와 <이유>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은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해석을 가하고 있느냐의 차이이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각기 범인에게 집중하느냐 사건의 주변 인물들에게 집중하느냐로 갈렸으며, 그 결과로 나타난 차이가 바로 따뜻함과 냉정함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미야베 미유키는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세심해지고 조심스러워집니다. 그리고 위 인터뷰에서처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도 하지요.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는 모르겠다며 그저 손을 놓아버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의 전작들에서 행했던 것처럼 그런 스스로의 고민을 조심스레 작품 속에 풀어놓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이름 없는 독>인 셈이죠. 따라서 이 작품이 <이유>나 <모방범>과 다르다고 말한다면, 그 맥락은 <이유>와 <모방범>이 <화차>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추리소설이 변해 가는 흐름을 살펴보면, 그저 작풍이 변해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독>은 <누군가>의 후속편 답게 전작과 상당 부분에서 접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작의 등장인물들이 재차 등장한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의 전개 구조를 취한다는 것 외에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의 처지에서 비롯되는 그의 내적인 고민이 이 작품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갖고 그려지고 있으며, 그러한 고민이 단지 스기무라 개인의 사정에만 그치지 않고 작품의 주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서술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누군가>와 <이름 없는 독>은 단지 등장 인물들과 배경 정도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작에서 정착시킨 스기무라의 정서적 흐름까지 고스란히 일관되게 유지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은 스기무라의 내적인 성장기로 규정지을 수 있는 전작 <누군가>와는 달리 급격한 사회파 추리소설로 급격한 장르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작품임에도 이 두 작품들 사이에는 별다른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작에서 등장했던 인물들도 별다른 위화감 없이 그 모습 그대로 이 작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이마다 회장은 전작의 카리스마 있는 모습이 아닌 그저 연륜있는 어르신 정도로 보인다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만)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무리없이 기존 인물들 사이에 자리잡습니다. 사건 자체는 스케일이 커지고 그 수법도 잔인해졌지만 그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여전히 전작의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보입니다.

<화차>에서 신조 교코의 자취를 추적하고 그 뒷모습을 점차 그려내면서 사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이유>에서는 시선을 넓게 돌리면서 사건 주변부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들어나갑니다. 또 <모방범>에서는 피해자 뒤에 남겨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세심하게 그려나가지요. 그리고 <이름 없는 독>에서는 스기무라 사부로라는 한 명의 개인이 사회의 독과 부딪치는 과정을 스기무라의 내적인 고민과 연결시켜 1인칭으로 서술합니다. 이렇게 스기무라의 내적인 고민을 사회적 이슈와 연결시키는 것이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사회파 추리소설에서 새로 선택한 방식인 듯 합니다.

<화차>에서 <이유>와 <모방범>으로 이어지면서 미야베 미유키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낮아지더니, <이름 없는 독>에서는 아예 1인칭 화자 속으로 들어갑니다. 작품 속 일개 개인의 시선으로는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맥락을 정확히 꿰뚫어 볼 수는 없죠. 이러저러한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수습하는 것이 우선일테고,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면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 고작이겠죠. 이 작품에서 미야베 미유키는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을 철저히 스기무라의 눈높이로 유지시키면서 그의 목소리로 사건의 얼개를 들려줍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바로 누가 봐도 부족함이 없이 행복한 스기무라 사부로의 캐릭터는 빛을 발합니다. 스기무라에게 있어 적당히 무시하면서 살지만 여전히 신경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부자 마누라를 얻어 팔자를 고쳤다' 라는 주변 사람들의 적당히 시기어린 시선입니다. 독자 감상에서도 '부자 주제에 뭐가 평범하다는 거냐' 라는 이야기들이 심심찮게 볼 수 있고, 그런 수근거림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런 반응이야말로 확실히 가장 평범한 반응일테죠. 끊임없이 스기무라에게 농담삼아 독설을 건네곤 하는 소노다 편집장의 존재가 오히려 더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겐다 이즈미가 등장합니다. 사방으로 독을 내뿜던 겐다 이즈미는 스기무라의 처지를 알아채고는 그에게 공격성을 집중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악의섞인 농담이나 악의없는 독설은 적당히 희석되어 있기 때문에 나름 무시할 수 있지만, 겐다 이즈미가 공격 대상을 스기무라로 정한 이후 그 독은 무시못할 위협이 됩니다. 독은 농축되었을 때 무엇보다 위헙한 법이죠. 스기무라의 결혼생활에 대해 농담을 던지는 젊은 사원이나, 스기무라의 존재 자체를 못마땅해하는 겐다 이즈미는 스기무라에 대한 기본적인 정서만큼은 크게 차이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당히 흘려보낼 수 있는 농담 대신 실질적인 위협이 닥쳐오면서, 스기무라는 언제든지 자신과 가족은 타인의 독에 의해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후루야 아키토시의 독살 사건은 특정 대상을 노리지 않은 무차별 범죄의 일환으로 세간에 알려집니다. 독은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확산하면서 스며들어갑니다. 그 피해가 누구에게 돌아가게 될지 범죄를 저지르는 범인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차별 범죄이고 따라서 그 공격의 대상은 모호해집니다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는 엄연히 자신들을 향한 현실적인 공격이 됩니다. 살인사건에서 동기를 찾고 관계자를 만나려 하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 회의하는 것은, 그러한 무차별 범죄가 그 피해자들게는 뚜렷한 날을 세우며 다가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나호코가 그토록 새 집에 신경을 썼던 토양 오염과 환경 호르몬 문제입니다. 미야베 미유키가 나호코의 입을 빌려 설명하는 토양 오염의 문제는 독의 농축과 확산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오염 정도를 조사하는 과정부터가 녹록치 않으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내기도 어렵습니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자신이 사는 곳에 대한 오염 조사를 확실히 마쳤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안전하다고 자신할 수 없습니다. 독의 본질은 농축과 확산인걸요. 게다가 인간들 스스로가 독을 내뿜는 현실에서는요.

겐다 이즈미가 왜 그토록 타인에게 독을 내뿜어야 했는지 확실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녀의 개인적인 성정을 언급하는 것이 가장 편한 해석일지도 모릅니다. 후루야 살인사건의 범인에게 다른 돌파구가 있었을 거라며 섣불리 질책할 수는 없습니다. 미치카가 그 범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지라도요. 이러한 의문과 고민을 가지고 스기무라는 탐정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을 잠시 생각합니다. 글쎄요. 자신에게 닥친 일을 딛고 일어서거나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좀 더 파헤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을 먼저 생각하다니 조금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다음 편을 읽어보고 판단을 내리는 편이 낫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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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밑줄] 쓰는 글이 허술해지는 프로세스

    Tracked from D E L I U S [2007/06/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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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딱딱한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라 해도 그걸 생업으로 삼은 이상 일종의 인기인이나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다. 그게 요즘 세상이다. 옳고그림이나 진실과 거짓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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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robat [2007/04/08 0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읽어보니 쓰다가 귀찮아졌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인다. 1, 2번 모두 '다음 작품에서는...' 같은 말로 빠져나가려 하다니. 에...억지로 꾸역꾸역 쓰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그런데 이거 매번 하는 짓이라...;;;

  2. eunie2 [2008/03/22 1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닝에서 링크 따라왔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언제 한 번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에 대해 토론이라도 해보고 싶은 느낌이에요 ^^